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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 정의는 여전히 정의일까요. 영화 <검찰측의 죄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무라 타쿠야와 니노미야 카즈나리, 두 배우의 이름만 보고 가볍게 봤는데, 이건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공소시효, 기소권, 검찰개혁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이 영화 한 편 안에 촘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죄인
법정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인데, 공소시효라는 개념이 나올 때마다 묘하게 찝찝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공소시효(公訴時效)란, 범죄가 발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가 더 이상 그 범죄를 기소할 수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지나버리면 설령 범인을 알고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영화 속 마츠쿠라 시게오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가 살해된 사건에서 그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끝내 확보하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습니다. 모가미 검사는 그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23년이 지나도록 마츠쿠라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이 설정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모가미의 감정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이 너무 이해됐기 때문에 더 무서웠습니다. 법이 심판하지 못한 죄인을 눈앞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과연 원칙을 지킬 수 있을까 — 솔직히 그 감정은 누구든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한국은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살인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일본 역시 2010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바 있습니다. 영화 속 유키 사건은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하기에 시효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기소권이 무기가 될 때
영화를 보다가 등골이 서늘해진 장면이 있었습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마츠쿠라가 노부부 살인의 범인이라는 증거는 오히려 흔들리는데, 모가미는 반대로 확신을 더 굳혀가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 '아, 이 사람은 사실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해놓은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라는 게 보였고, 그게 정말 소름 돋았습니다.
형사사법 절차는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 경찰 및 수사기관 → 범죄 혐의와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 단계
- 검사 → 수집된 증거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 여기서 기소(起訴)란 검사가 피의자를 법원의 재판에 넘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 법원 → 최종적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을 선고하는 단계
이 구조가 나뉘어 있는 이유는 한 기관이나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드는 일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기소권(起訴權), 즉 검사가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무리하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사건이 법정으로 가는 것을 걸러내는 안전장치로 기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가미는 그 권한을 정반대로 씁니다. 마츠쿠라는 나쁜 사람이라는 개인적 확신을, 현재 사건의 기소 결정에 그대로 투영합니다. '심증이 있다'는 것과 '이 사건의 범인이다'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말입니다. 제 생각에 이런 확증 편향, 즉 자신의 믿음에 맞는 증거만 골라 받아들이는 심리는 전문가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검찰개혁이라는 현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자꾸 영화와 현실이 겹쳤습니다. 마침 한국에서도 검찰개혁 논의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제가 그 흐름을 관심 있게 지켜봐 왔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2026년, 한국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능을 분리하는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법제화했습니다(2026년 10월 2일 시행). 핵심은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없애고, 수사는 수사기관이, 공소 제기와 유지는 공소청 검사가 담당하도록 역할을 나누는 것입니다. 공소 제기(公訴提起)란 검사가 피의자를 법원의 심판에 부치는 절차로, 여기서 공소청은 그 기능만을 전담하는 기관입니다(출처: 대한민국 국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시각도 있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느낀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사권을 가진 기관에도 권한 남용의 위험은 똑같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수사와 기소의 연결이 지나치게 느슨해지면, 사건 대응의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느냐보다, 각 단계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피의자의 권리와 적법절차(適法節次)가 지켜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적법절차란 법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서만 국가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형사사법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입니다. 이 원칙이 흔들릴 때 모가미 같은 사람이 탄생한다는 걸, 영화는 아주 담담하게 보여줬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검찰측의 죄인, 원작 소설이 따로 있나요?
A. 있습니다. <범인에게 고한다>로 잘 알려진 작가 시즈구이 슈스케가 2013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공소시효 문제와 수사기관에 의한 억울한 원죄 등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미스터리 장르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제가 영화를 먼저 봤는데, 원작 소설이 더 중층적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볼 계획입니다.
Q. 기무라 타쿠야랑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같이 나오는 건데 케미가 어떤가요?
A.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가 두 사람의 대립입니다.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하는 모가미는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점점 어둠으로 기울어가는 인물이고,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연기하는 오키노는 그 균열을 천천히 감지해가는 인물입니다. 일본 최정상 배우 두 명이 처음 맞붙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였는데, 직접 겪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Q. 한국 검찰개혁이랑 이 영화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A.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한국의 현실과 겹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기관이 함께 가질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를 영화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거든요. 한국은 2026년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분리를 법제화했는데,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나면 그 논의의 맥락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Q. 영화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스포일러 없이 알 수 있을까요?
A. 스포일러 없이 말씀드리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보고 나서 통쾌함보다는 오래 남는 불편함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 영화가 제게 남긴 질문은 하나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가. 모가미는 그러지 못했고, 그 순간 그도 법 밖에서 심판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강한 권한일수록 더 엄격한 한계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한계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영화만큼 실감하게 보여준 작품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짜임새 있는 묵직한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