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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진짜 괴물이 나올까요?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 불편한 진실이 오래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다시점 구조, 확증 편향
영화는 세 개의 파트로 나뉩니다. 엄마 사오리의 시점, 담임교사 호리의 시점, 그리고 아이들인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 같은 사건이 세 번 반복되지만, 볼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 구조를 흔히 다시점 서사(多視點 敍事)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다시점 서사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반복 서술함으로써, 고정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원형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 아내, 산적이 각자 다른 진술을 내놓고 관객은 끝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구조인데, 고레에다 감독은 이 문법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해 《세 번째 살인》(2017)에 이어 이번 《괴물》에도 적용했습니다. 제가 두 작품을 연달아 보고 느낀 것은, 고레에다 감독이 이 주제에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매번 더 날카롭게 갈아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엄마 사오리 파트에서는 컷의 리듬이 빠릅니다. 세탁소 업무, 아들 걱정, 병원, 학교 항의까지 장면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사오리의 불안에 동조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 볼 때는 "선생이 문제네"라고 단정했습니다. 그게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작동 방식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사오리는 미나토의 거짓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호리 선생에 대한 확신을 굳혀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도 사오리와 똑같은 사각지대 안에 갇히게 됩니다.
호리 선생 파트는 사오리 파트보다 호흡이 조금 느슨합니다. 목적 없는 연애, 책의 오탈자를 찾는 이상한 취미, 어딘가 미성숙한 청년의 일상. 이 여백이 그를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반면 미나토와 요리 파트의 시간은 현저히 느리게 흐릅니다. 맨홀 뚜껑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별 목적 없이 걷는 장면들. 어른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아이의 시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입니다. 이 시간의 밀도 차이가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말없이 전달합니다.
- 사오리 파트: 빠른 컷 리듬 → 어른의 조급함과 확증 편향을 체험하게 만듦
- 호리 파트: 중간 템포 → 오해받는 인간의 복잡성과 불완전함을 보여줌
- 미나토·요리 파트: 느린 시간 → 어른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표현
이 구조에 대해 "세 번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건 지루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 번째 파트에 접어들었을 때 앞서 봤던 장면들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재조립되는 경험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대사 한 줄이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줬습니다. 이것은 설명보다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종류의 충격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내내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사카모토는 《괴물》 촬영 직전인 2023년 3월 타계했고, 이 영화는 그의 마지막 영화 음악 작업이 되었습니다. 과도하게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장면 위에 투명하게 얹는 그의 음악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외롭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23년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1934년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이미지화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외로운 소년 조반니와 친구 캄파넬라가 기차로 여행을 떠나는 이 이야기에서, 조반니는 미나토처럼 모자 가정이고 캄파넬라는 요리처럼 부유한 집안입니다. 이 동화적 모티브가 폐선로 위에 버려진 낡은 전철 장면과 겹치는 순간,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인트라텍스트(Intertextuality)적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인트라텍스트란 작품이 다른 텍스트나 작품을 참조·인용·변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그 낡은 전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학교 폭력도, 과잉간섭하는 어른도, 폭력적인 아빠도 없는 두 아이만의 세계입니다. 동시에 언제든 부서지거나 발견될 수 있는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합니다. 폭풍우 속에서 빗방울이 별처럼 쏟아지는 그 장면을 저는 한동안 잊지 못했는데, 덧없음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담긴 그 이미지가 영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에서 미나토와 요리의 관계를 이해하는 어른은 결국 호리 선생뿐입니다. 아이들이 원고지 퍼즐처럼 적어놓은 이름을 보고서야 진실을 깨달은 그가 "틀리지 않았다"고 외치는 장면은, 어른의 깨달음이 늘 한 박자 늦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채 아이들에게 닿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미 폭풍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결말은 답을 주지 않기에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교장 캐릭터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무책임한 인물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교장은 손주를 잃은 죄책감과 거짓말의 무게를 짊어진 채 밤마다 다리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미나토의 거짓말을 추궁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알고 있고, 아이들이 단죄받는 걸 막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시점을 영화가 끝까지 열어두는 것은, 관객 자신도 교장처럼 불완전한 판단자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씨네21 인터뷰에서 고레에다 감독 역시 "모든 인물에게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괴물》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감독이 의도적으로 열어둔 결말입니다. 폭풍 후 햇빛 속에서 두 아이가 함께 달려가는 장면을 희망으로 읽는 분들도 있고, 현실에서 더 이상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은유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를 이탈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방향이 이 영화의 전체 맥락에 더 맞다고 봤습니다.
Q. 영화에서 미나토와 요리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A. 두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끌리는 관계입니다. 영화는 이를 LGBTQ+ 청소년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도록 설계했지만, 직접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괴물인지 아닌지는 정체를 알면 결정된다"는 아이들의 놀이가 그 질문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단정하기보다 아이들의 혼란 자체를 보는 것이 더 풍부한 감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 《괴물》과 《라쇼몽》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두 작품 모두 다시점 서사를 활용해 진실의 다면성을 탐구합니다. 《라쇼몽》이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진실을 왜곡한다"는 인간의 이기심을 중심에 놓는다면, 《괴물》은 "악의 없이도 오해는 이렇게 쌓인다"는 소통의 부재와 사각지대를 더 비중 있게 다룹니다. 악인이 없다는 점에서 《괴물》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Q. 교장 선생님 캐릭터가 왜 그렇게 무표정하고 냉담하게 묘사되나요?
A. 교장은 손주를 차로 치어 죽게 한 뒤 남편에게 뒤집어씌운 거짓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 죄책감의 무게가 그녀를 형식적이고 무감각해 보이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영화는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건 행복이 아니야"라는 대사를 통해 인간적인 면을 남겨두는데, 이 캐릭터를 단순히 악역으로 보면 이 영화의 핵심을 절반쯤 놓치게 됩니다.
결론
《괴물》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누군가를 섣불리 괴물로 만든 적은 없었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악당이 없습니다. 사오리는 아들을 사랑했고, 호리 선생은 나름 성실했으며, 교장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한 채 고립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괴물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 생겨나는 어떤 구조에 가깝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빚어낸 이 조합은 각자의 역할을 넘어서 서로를 증폭시켰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혼자서 보시길 권합니다. 옆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생각에 잠길 여유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