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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토모히사와 고마츠 나나의 조합. 성인이 되서 보는 순정만화 감성. 뻔한 듯, 유치한 듯 하면서도 재밌게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원작 만화의 팬이라면 분명 다른 감상이겠지만, 저로서는 교탁 밑 키스 장면 하나가 이 영화의 전부를 설명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쿠루루기 유니, 표정 없는 천재 소녀
학창 시절에 일본 순정만화를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말수 적고 무표정한 여주인공이 알고 보면 감정이 넘치는 캐릭터라는 공식이었는데, 쿠루루기 유니는 그 공식의 정석 같은 인물입니다.
유니는 전교 1등이지만 감정 표현이 극도로 서툽니다. 기분이 좋아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신 머리에 꽂은 고양이 핀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부끄러우면 귀에 손이 가고, 긴장하거나 속상할 때는 치마 끝을 꼭 쥐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런 미세한 신체 언어, 즉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를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는 사람이 사쿠라이 선생님입니다.
제가 이 캐릭터를 보면서 느낀 건, 원작 만화에서는 이 섬세한 버릇들이 컷 하나하나에 충분히 담겼겠지만 영화 러닝타임 안에서는 압축되다 보니 유니라는 인물의 깊이가 조금 덜 전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마츠 나나의 무표정 연기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 기쁠 때: 고양이 삔을 만지작거림
- 부끄러울 때: 귀에 손을 댐
- 긴장하거나 속상할 때: 치마 끝을 꼭 쥠
- 단것을 좋아하는 소소한 취향도 캐릭터의 온도를 높여주는 요소
야마삐가 연기한 츤데레 선생님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사쿠라이 선생님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다들 잘 어울린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차갑고 직선적이지만 학생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교사라는 역할이 꽤 자연스러웠습니다.
사쿠라이 선생님 캐릭터의 핵심은 츤데레(tsundere)입니다. 츤데레란 겉으로는 차갑고 퉁명스럽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감정을 품고 있는 이중적 성격 유형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유니가 선물을 건넸을 때 "착각하게 한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가 뺨을 맞고, 이후 자신도 유니에게 감정이 생겼음을 인정하는 과정이 전형적인 츤데레 서사 구조입니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원작 만화에서는 사쿠라이 선생님이 허리를 깊이 숙여 키스하는 장면이 기럭지, 즉 신장 차이를 극적으로 활용한 연출로 유명한데, 영화에서는 야마삐의 실제 신장 때문에 그 느낌이 다소 줄었다는 점입니다. 만화적 연출 문법과 실사 영화의 물리적 한계가 충돌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사쿠라이 선생님이 아버지처럼 주먹을 쥐는 버릇을 가졌다는 설정, 파란 석양 이야기 등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가 캐릭터에 입체감을 주는데, 이 부분은 영화에서도 꽤 잘 살아있었습니다.
순정만화 공식과 영화의 만남
학창시절에 순정만화를 많이 읽어본 분이라면 이 작품에서 익숙한 장면들을 연달아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보면서도 "아, 이 장면 만화에서 꼭 나오는 거지"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인 장면이 여럿 있었습니다.
창고에 가두는 장면, 다리를 다치고 공주님 안기로 양호실까지 이동하는 장면, 선생님의 체취가 남은 옷에서 향기를 느끼며 감정을 자각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클리셰(cliché)는 장르적 관습이 독자에게 주는 안도감과 기대 충족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공식처럼 굳어진 서사 패턴을 뜻하는데, 순정만화 장르에서는 이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르의 문법으로 기능합니다(출처: J-STAGE 일본 만화 서사 연구).
그런데 제 생각에 이 공식들은 만화 지면 위에서 훨씬 잘 작동합니다. 컷 한 칸에 집중되는 시선, 독자가 스스로 채우는 상상의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모든 것을 직접 보여줘야 하므로, 만화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던 장면이 스크린에서는 다소 가볍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원작 만화로 먼저 접했다면 더 진하게 감정이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탁 밑에 숨어 종이에 고백을 쓰고, 선생님이 허리를 숙여 키스하는 장면은 그나마 이 영화에서 만화적 연출을 가장 잘 살린 시퀀스였습니다. 이 한 장면이 전체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주의 100m 달리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가 고마츠 나나의 달리기 실력이었습니다. 할 말이 생기면 자기 말만 하고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처음엔 귀엽게 봤다가 나중에는 남주가 잡을 수가 없겠다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 패턴은 사실 일본 로맨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에서 자주 쓰이는 감정 지연 장치입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감정이 쌓이고 해소되는 방식을 설계하는 틀을 말하는데, 여주가 도망침으로써 감정의 해소를 다음 장면으로 미루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의도는 이해하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몰입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출처: 일본영화제작자연맹(영련)).
결국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건 순전히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고마츠 나나 덕분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중간에 멈췄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배우의 존재감이 이야기의 빈틈을 메워주었습니다.
파티쉐를 꿈꾸는 남학생 캐릭터처럼 주변 인물들이 나름의 서사를 갖고 있는 점은 좋았습니다. 쓰러진 유니를 양호실로 옮긴 것이 사쿠라이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을 파티쉐 소년이 나중에 전해주는 장면은 소소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 영화의 가장 강렬한 장면: 교탁 밑 키스
- 아쉬운 점: 반복되는 여주 도망 패턴, 만화 대비 줄어든 기럭지 연출
- 끝까지 보게 만든 요소: 야마시타 토모히사 + 고마츠 나나 조합
- 소소하게 좋았던 것: 파티쉐 소년, 나미짱 등 주변 인물들의 역할
자주 묻는 질문
Q. 근거리 연애 원작 만화와 영화 중 뭘 먼저 보는 게 좋나요?
A. 제 경험상 원작 만화를 먼저 보는 걸 권합니다. 만화에서 쌓이는 감정의 결이 영화보다 훨씬 촘촘하게 전달됩니다. 영화를 먼저 보면 이야기의 뼈대는 파악할 수 있지만, 쿠루루기 유니의 미세한 감정 변화나 바디 랭귀지 같은 섬세한 표현은 지면에서 더 잘 살기 때문입니다.
Q. 야마시타 토모히사(야마삐)가 사쿠라이 선생님 역에 잘 어울리나요?
A. 츤데레 선생님 특유의 차가움과 내면의 따뜻함을 번갈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꽤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원작 만화에서 강조되는 기럭지(신장 차이) 연출은 실사에서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그 점은 만화 팬이라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Q. 근거리 연애에서 교탁 밑 키스 장면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됐나요?
A. 수업 중이라는 공개적 상황, 종이에 써서 전하는 고백, 선생님이 먼저 허리를 숙여 키스하는 반전이 한 장면 안에 압축돼 있어서입니다. 순정만화의 클리셰를 가장 극적으로 구현한 장면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만화적인 연출이 살아난 순간이라고 봅니다.
Q. 일본 로맨스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저처럼 일본 감성에 거리가 있는 분께는 살짝 장벽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감정 표현이 절제되고 전개가 느린 편이라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 익숙한 분이라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고마츠 나나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끝까지 볼 수 있습니다.
결론
근거리 연애, 영어 선생님과 보충수업을 하다가 좋아졌고, 선생님이 "우리는 아니다" 했다가 교탁 밑 고백에 키스로 화답하고, 졸업하면 결혼하자 했다가 들켜서 헤어지고, 유학 갔다 돌아온 여주에게 지금 결혼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흐름을 요약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쿠루루기 유니라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순정만화 특유의 설렘은 여전히 좋습니다.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고마츠 나나의 팬이라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