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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리프 설정의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 화려한 액션이나 복잡한 퍼즐 같은 구조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만이 없는 거리》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혼자였던 아이 곁에 누군가가 있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리바이벌이라는 능력
타임리프(time leap)라는 개념, 즉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동하는 능력을 다루는 작품은 이미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설정에서 주인공은 능력을 자유롭게 제어하고, 원하는 시점으로 돌아가 상황을 유리하게 바꿉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후지누마 사토루가 가진 리바이벌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서 리바이벌이란 사토루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에서 사고나 사건이 임박했을 때 자동으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현상입니다. 원인도 모르고, 멈추는 방법도 없습니다.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같은 순간을 반복할 뿐입니다.
제가 이 설정을 접했을 때 흥미로웠던 건 이 능력이 전혀 편리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사토루는 만화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리바이벌은 언제 발동할지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삶이 이미 녹록지 않은 사람에게 통제 불가능한 능력이 붙어 있다는 설정 자체가 묘하게 사토루의 고립감을 강화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리바이벌이 발동하면서 사토루는 18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갑니다. 의식은 29살 그대로인 채로, 몸만 10살입니다. 이 이중성, 즉 어른의 판단력을 가진 아이라는 설정이 영화 전반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제 생각에 이런 설정은 자칫 코믹하게 흘러가기 쉬운데, 이 영화는 그 경계를 꽤 잘 지킵니다.
히나즈키 카요를 구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가장 흥미롭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 기대를 안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히나즈키 카요라는 아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카요는 가정에서 상습적인 아동 학대(child abuse)를 받고 있는 아이입니다. 여기서 아동 학대란 신체적·정서적 폭력 등 아이의 안전과 발달을 위협하는 모든 가해 행위를 의미합니다. 카요는 학교에서도 혼자였고, 웃는 법도 몰랐습니다. 어린 사토루의 몸으로 돌아간 29살의 사토루는 카요에게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건을 막기 위한 계산이었지만,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마음은 달라집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좋았던 건, 사토루가 카요에게 해준 일이 거창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기다려줬고, 먼저 말을 걸었고, 자신이 믿는다고 행동으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그게 카요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이 장면들이 쌓이면서 영화는 스릴러에서 조용한 드라마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그 이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동 발달 연구에서도 학대 피해 아동에게 가장 효과적인 개입 중 하나는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해 줄 수 있는 한 명의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WHO, Child Maltreatment). 영화가 이 사실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토루가 카요에게 해준 역할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 카요에게 필요했던 것: 먼저 다가와 기다려주는 사람
- 사토루가 해준 것: 함께 밥 먹기, 말 걸기, 친구와의 시간 만들어주기
- 결과: 처음으로 평범한 어린 시절의 하루를 경험한 카요
범인 야시로, 편견에 대한 질문
연쇄 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은 초등학교 담임교사 야시로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학생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선생님으로 보였던 인물입니다. 이 설정 자체가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과 연결됩니다.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범죄자의 행동 패턴·심리적 특성을 분석해 용의자를 좁혀가는 수사 기법입니다. 그런데 이 기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범죄자는 겉으로 봐도 다르게 생겼을 것"이라는 편견을 품고 있습니다. 야시로는 그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반대의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한다면, 그것 역시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영화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토루 어머니가 한 행동, 즉 위험한 상황을 목격하고 개입하려 했던 것이 영화가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방향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범인 추적의 반전보다 오히려 더 생각할 거리를 줬다고 느꼈습니다. 야시로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보다,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영화 연출 면에서는 야시로를 범인으로 일찍 예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반복되어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타임리프 서사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것은 과거를 바꾸고 나서 현재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극적인 반전입니다. 《나만이 없는 거리》도 표면적으로는 그 구조를 따릅니다. 사토루가 눈을 뜬 현재는 분명히 달라져 있고, 카요는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사토루는 오랜 혼수상태로 인해 자신의 기억 일부를 잃은 채 그 현재를 마주합니다.
여기서 아리무라 카스미가 연기한 카타기리 아이리가 다시 등장합니다. 아이리는 사토루가 과거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토루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위험에서 지켜준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이리는 기억이 불완전한 사토루 앞에서 먼저 다가옵니다. 제가 이 마지막 장면에서 좋았던 건, 아이리가 사토루에게 설명을 요구하거나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다가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인지심리학에서는 정서적 기억(emotional memory)이라는 개념을 다룹니다. 여기서 정서적 기억이란 사건의 세부 내용보다 당시 느꼈던 감정이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남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뇌과학적으로도 편도체(amygdala)가 감정과 연결된 기억을 더 강하게 각인시킨다는 연구가 있습니다(출처: NIMH, Understanding Traumatic Stress). 사토루가 아이리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해도 무언가 남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장면은, 이 개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보였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리바이벌이 사토루에게 준 것은 과거의 사건 해결보다, 자신이 진짜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현재였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결말은 감동을 억지로 만들려 할 때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지는데, 이 영화는 사토루와 카요, 사토루와 아이리가 쌓아온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만이 없는 거리 영화, 원작 만화랑 결말이 다른가요?
A. 네, 상당히 다릅니다. 영화판은 12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영화만의 결말로 정리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은 분이라면 후반부가 많이 압축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본 뒤 원작이 궁금해진 경우라서, 두 가지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리바이벌 능력이 왜 사토루에게만 생긴 건지 영화에서 설명해주나요?
A. 영화에서는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리바이벌이 왜 사토루에게 발동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설정은 논리적 허점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능력의 원리보다 그 능력이 사토루를 어디로 데려가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Q. 후지와라 타츠야가 어린아이 역할도 직접 하나요?
A. 과거 장면에서 어린 사토루는 아역 배우가 연기합니다. 후지와라 타츠야는 주로 현재 시점의 성인 사토루를 맡았습니다. 다만 과거 장면에서도 성인의 감정과 판단이 아이의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아역 배우의 연기와 전체적인 연출이 그 이중성을 잘 살렸다고 느꼈습니다.
Q. 공포스럽거나 잔인한 장면이 많은가요?
A. 아동 유괴·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직접적으로 잔인하게 묘사하는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 스릴러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는 있지만, 공포 영화처럼 자극적인 연출보다는 심리적 긴장감 위주로 진행됩니다. 잔인한 장면에 민감한 분도 비교적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편입니다.
결론
《나만이 없는 거리》는 타임리프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영화지만, 보고 나서 남는 것은 장르적 쾌감보다 사토루가 카요에게 건넨 작은 관심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다려온 하루일 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문장은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다소 예측 가능하고 후반부가 압축된 아쉬움은 있지만, 히나즈키 카요의 변화와 아이리의 믿음이 그 단점을 충분히 메웁니다. 미스터리와 타임리프가 섞인 일본 영화를 좋아하시거나,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시간을 내볼 만한 작품입니다. 원작 만화와 함께 보면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이 채워지면서 더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