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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연대로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2005년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그 질문에 꽤 정직하게 답합니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게이 양로원에 발을 들인 사오리가, 끝에는 자기 발로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줄거리가 아니라, 빛바랜 여름 색 같은 화면 분위기였습니다.

사오리의 감정변화
어릴 적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도장 회사에서 일하며 빚을 갚고 있는 딸 사오리 앞에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옵니다. 아버지 히미코의 연인 하루히코(오다기리 조)였습니다. 그가 꺼낸 제안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히미코가 설립한 게이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서 일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오리가 일을 수락한 건 높은 일당과 유산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순수한 화해의 의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설정이 오히려 영화를 믿음직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갑자기 착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억지로 끼어들게 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메종에서 사오리의 초반 태도는 솔직히 불편합니다. 입주자들에게 손이 닿는 것조차 꺼리고, 말투나 옷차림에도 숨기지 않고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사라지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입주자 야마자키와 함께 간 댄스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야마자키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직접 만들면서도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정작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젠더 표현(gender expression)'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됩니다. 젠더 표현이란 옷차림, 행동, 외모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외부로 드러내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야마자키에게 드레스를 입는 행위는 단순한 외출 준비가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러온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야마자키가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선 날, 과거 직장 부하 직원에게 조롱당하고 충격으로 쓰러집니다. 이를 본 사오리는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사과해! 사과하라고!"를 반복해서 외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이 외침이 야마자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오리 안에 오래 묵어있던 분노, 즉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향한 감정, 사회가 던지는 혐오의 시선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오리가 처음부터 야마자키를 좋아했던 게 아닙니다. 같이 옷을 고르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쌓였기 때문에 그 모욕을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영화 연구에서는 이런 변화를 '공감적 상상력(empathic imagination)'이라고 부릅니다. 공감적 상상력이란 단순히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구체적인 삶과 맥락 안으로 들어가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사오리의 변화는 설교나 깨달음이 아니라, 공유된 일상에서 조용히 자란 것이었습니다.
- 사오리의 메종 입주 동기: 경제적 이유(높은 일당, 유산 기대)
- 감정 변화의 결정적 장면: 댄스홀에서 야마자키를 향한 "사과해!" 외침
- 분노의 복합적 근원: 야마자키를 향한 모욕 + 자신이 쌓아온 오래된 상처
- 변화의 방식: 설교나 사건이 아닌, 함께한 시간에서 자란 공감
연대와 피키피키
'메종 드 히미코'는 어떤 공간일까요. 가족과 사회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게이 노인들이 서로를 돌보며 만든 작은 공동체입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고, 아픈 사람 곁을 지키며, 외로운 밤을 같이 견디는 곳입니다.
퀴어 공동체 연구에서는 이런 관계를 '선택 가족(chosen family)'이라고 부릅니다. 선택 가족이란 혈연관계없이 서로의 돌봄과 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가족적 관계망을 의미합니다. 출처: WHO — LGBTQI+ 관련 정신건강 자료에서도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가 소외된 집단의 정신건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메종의 입주자들은 선택 가족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옷차림과 거침없는 말투 뒤에는 가족에게 자신의 삶을 숨긴 채 수십 년을 버텨온 시간이 있었습니다. 입주자 루비는 아들과 손주가 있지만,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 멀리서 지내온 인물입니다. 루비가 쓰러진 뒤 결국 가족에게 보내지는 장면을 보며 제가 먼저 걱정한 건 루비가 아니었습니다. 루비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이 삶을 몰랐을 테고, 루비가 숨겨온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들 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부모가 성소수자인 이야기, 그것도 자식 세대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제가 처음 접한 구도였습니다. 자식과 동성애자 부모의 관계를 다룬 다큐나 영화는 몇 편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노년의 게이 당사자를 중심에 놓은 서사는 드뭅니다. 출처: HRC(Human Rights Campaign) — 고령 성소수자 자료에 따르면, 성소수자 노인의 상당수가 돌봄 시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메종은 그런 현실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키피키피키'가 있습니다. 루비가 손주에게서 받은 엽서에 적혀 있다며 사오리에게 전해준 레인보우 전사의 주문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소외, 병, 죽음과 늘 가까이 있습니다. 그 무게를 잠깐 판타지로 덮는 장치가 이 주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주문을 함께 외치는 순간, 그들은 한편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담벼락에 "꺼져"라고 적혀 있던 자리에 "사오리 보고 싶어 피키피키피키!"가 남습니다. 메종이 여전히 그곳에 있고, 사람들이 사오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오리는 다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 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문을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이랄까요.
아버지를 용서했을까
사오리는 히미코를 결국 용서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깔끔한 화해 같은 건 없습니다. 메종에서 지내며 아버지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거실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오리는 놀랍니다. 버림받은 피해자라고만 기억했던 어머니가 히미코의 삶 안에 여전히 존재했던 것입니다. 배신자라고 여겼던 아버지도, 피해자라고 믿었던 어머니도,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걸 알게 된 사오리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 다른 색으로 변했습니다. 그 변화가 용서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메종 드 히미코,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나요?
A. 가족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본 적 있는 분이라면 특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퀴어 서사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버려짐'과 '화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아서, 생각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Q. 하루히코와 사오리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 있는 건가요?
A. 영화는 그 감정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하루히코가 사오리에게 "호소카와가 부럽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성적 질투라기보다 '닿을 수 있음'에 대한 부러움처럼 읽혔습니다. 사랑인지 외로움의 공명인지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냥 그 감정 자체로 두는 편이 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Q. 피키피키피키가 뭔가요? 영화에서 왜 중요한가요?
A. 입주자 루비가 손주에게서 받은 엽서에 적혀 있다며 사오리에게 전해준 레인보우 전사의 주문입니다. 병과 소외와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슬픔을 잠깐 농담으로 바꾸는 장치로 쓰이는데, 이 주문을 함께 외치는 순간 그들은 같은 편이 됩니다. 영화를 본 사람만이 아는 암호 같아서, 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그 편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Q. 사오리는 결국 아버지를 용서하나요?
A. 깔끔한 화해는 없습니다. 메종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지만, 그것이 상처를 지우지는 않습니다. 용서보다는, 아버지를 오직 자신을 버린 사람으로만 기억하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난 것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결론
《메종 드 히미코》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꼭 용서나 화해로 귀결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옷을 고르고, 옆에 있다 보면 그 사람이 이름 없는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사오리가 야마자키를 위해 소리친 외침은 그 과정의 결과였습니다.
20년 전 오다기리 조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말보다 표정으로, 행동보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이 영화의 정서와 아주 잘 맞았습니다. 빛바랜 여름 같은 화면 색감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여름이 오면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