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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초식남(草食男子)이라는 캐릭터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초식남이란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조용히 머무르는 남성을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입니다. 그런데 2013년작 <묻지마, 사랑>(원제: 箱入り息子の恋)을 보고 나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켄타로라는 인물이 제 슬픔 포인트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거든요.

켄타로라는 인물, 초식남
영화 정보란에는 켄타로를 '반히키코모리(半引きこもり)'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히키코모리란 완전한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지만 사회적 관계를 극도로 회피하며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청 공무원으로 13년째 말단을 지키며 승진 의욕도 없고, 퇴근 후에는 밥 먹고 게임만 하는 35세 남자. 수치만 보면 꽤 한심한 스펙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고 나서 느낀 건, 켄타로는 그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인물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가 빗속에 서 있는 나오코에게 우산을 건넵니다. 왜 건넬 수 있었을까, 제가 이 장면을 보며 가장 오래 생각했던 질문입니다. 긴장 회피형 성격(回避型 性格), 즉 자극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기질의 소유자가 낯선 여성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건 사실 꽤 충격적인 행동입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켄타로의 내면에 친절과 배려가 기본값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맞선 자리에서 나오코의 아버지에게 면전으로 조롱을 당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켄타로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것을 담담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면이 아닌 외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거든요."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저는 켄타로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혼자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가슴이 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호시노 겐의 연기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연기를 연기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진짜 연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화면 속 켄타로는 그냥 켄타로였습니다. 이 영화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의 연기 평가 기준 중 하나인 내적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 즉 캐릭터의 감정선이 장면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시노 겐의 켄타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 규동집 가는 길에 큰 바위를 나오코 대신 자신이 먼저 넘어서 확인하는 장면
- 나오코가 왼손잡이임을 파악하고 팔이 부딪히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장면
- 입원 후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점자를 꼭꼭 눌러 쓰는 마지막 장면
이 세 장면은 켄타로가 얼마나 세심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의 사랑 방식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규동집 장면과 사랑의 비극성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출처: The Official Charlie Chaplin Website).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말이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켄타로와 나오코가 같은 규동집에서, 맞은편에 앉아, 서로 모른 척 규동을 먹으며 우는 장면. 멀리서 보면 우습고, 가까이서 보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따라 울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슬프냐고 누가 물으면 정확히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다만 이런 감각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안 웃긴 장면에서 혼자 웃음보가 터지듯이, 제 고유한 슬픔 포인트가 있는 것처럼요. 켄타로가 그녀의 이름을 참다 참다 결국 불러버리는 그 순간, 그리고 그녀가 사라져버리는 순간의 공백감이 제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의 감정 구조를 좀 분석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와 멜로드라마(Melodrama)의 혼종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란 연애 감정을 유쾌하고 가벼운 톤으로 그리는 장르를 말하고, 멜로드라마란 감정적 갈등과 비극적 요소를 중심에 두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두 장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 특유의 온도가 만들어집니다. 살이 삐쩍 마른 켄타로가 나체로 처절하게 빌고, 베란다를 한 바퀴 돌아 나오코의 손을 잡으려다 실패하는 장면들이 그 예입니다.
다만 제가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지점은 나오코 아버지의 캐릭터 처리입니다. 사랑을 가로막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켄타로를 차로 치게 만드는 전개는 순수한 감정선을 억지로 비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뻔함과 유치함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는데, 굳이 그 선을 넘어야 했는지 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는데, 나오코 아버지만큼은 그 공식에서 예외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사랑을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은 기쁨, 두려움,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기본 정서(Basic Emotion)를 동시에 활성화시킵니다. 여기서 기본 정서란 문화권과 상관없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핵심 감정군을 말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켄타로와 나오코의 이야기는 그 모든 정서를 100분 남짓한 시간 안에 고르게 건드립니다. 그게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묻지마 사랑 원제가 뭔가요, 뜻이 궁금합니다
A. 원제는 箱入り息子の恋입니다. 직역하면 '상자 속에 담긴 아들의 사랑' 정도가 됩니다. 상자 속에 넣어 소중하게 보관한다는 일본식 표현으로, 바깥세상에 내보내지 않고 보호한 아들이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됐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개봉 제목인 '묻지마, 사랑'보다 원제가 켄타로 부모의 마음을 더 절절하게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호시노 겐이 이 영화로 상을 받았나요
A. 네, 호시노 겐은 이 영화로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원래 음악인으로 더 알려진 그가 배우로서도 인정받은 작품입니다. 켄타로라는 캐릭터를 연기가 아닌 실재처럼 구현했다는 점에서 수상이 납득될 만한 퍼포먼스였습니다.
Q. 나오코 역 배우는 누구인가요
A. 나오코 역은 카호가 맡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켄타로와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이끌어갑니다. 특히 규동집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카호의 연기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Q. 초식남 캐릭터 영화인데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답답함이 오히려 몰입을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켄타로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이 생각보다 꽤 흡인력 있습니다. 울었다가 피식 웃게 되는 장면들이 교차하기 때문에, 순수한 감성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취향에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켄타로라는 인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파고들고 싶어지는 캐릭터란 게 있는데, 켄타로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반히키코모리, 초식남, 비혼주의 같은 사회적 딱지들이 한 인간을 설명하기에 얼마나 불충분한지를 이 영화가 조용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멀리서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것을 이 영화는 꽤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켄타로의 불굴의 의지와, 병상에서 점자를 꼭꼭 눌러 쓰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사랑이란 게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