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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데스노트의 L로 각인된 마츠야마 켄이치가 6살짜리 아이를 떠맡은 허둥지둥 청년을 연기한다는 것도 그렇고, 아시다 마나가 또 한 번 심장을 건드린다는 것도요. 일반적으로 육아 영화라고 하면 눈물 짜내는 신파가 먼저 떠오르는데, 버니 드롭은 그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시작해 학예회로 끝나는 이 작품, 보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아시다 마나 때문이었습니다. 드라마 마더에서 그 아이를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거든요. 자연스럽게 버니 드롭으로 흘러왔는데, 도입부부터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27살 미혼 직장인 다이키치는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낯선 꼬마 여자아이를 만나죠. 카가 린, 6살. 외할아버지의 사생아였습니다. 가족들은 경악했고, 그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처리"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걸렸는데, 영화 속 다이키치도 똑같이 느꼈나 봅니다.
어른들이 린을 위탁 가정이나 고아원으로 보내는 방향을 논하는 동안, 린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뭔지도 모를 나이인데 떠들거나 뛰지 않고, 오히려 관을 닫기 직전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용담꽃을 꺾어 손에 쥐여드렸습니다. 용담꽃은 쓴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진 꽃으로, 일본에서는 인내와 이별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먼저 울었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대화가 역겹게 느껴졌다는 다이키치의 감정이 화면 밖으로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충동적으로, 그러나 진심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자신이 키우겠다고요. 이후 다이키치가 린의 보호자로서 겪는 분투는, 바로 그 장면 한 컷에서 이미 모든 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육아 분투기
일반적으로 "아이를 혼자 키운다"라고 하면 그게 얼마나 현실적으로 벅찬 일인지 머리로는 알아도 체감이 잘 안 됩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벅참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 않고, 그냥 아침 만원 전철 장면 하나로 설명해 냅니다.
다이키치는 린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데, 야근이 잦은 직종이라 늦게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보육원(保育園)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일본의 국공립 또는 인가 아동 보육 시설로, 취업 중인 보호자를 전제로 운영됩니다.
매일 아침 린을 안고 뛰어서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로 달려가는 루틴이 반복됩니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결국 한계가 왔고, 다이키치는 야근 없는 부서, 즉 물류센터로 자리를 옮기는 결단을 내립니다. 커리어(career)를 내려놓는 선택이었습니다. 여기서 커리어란 단순히 직무나 직급이 아니라 한 사람이 쌓아온 직업적 경력과 방향성 전체를 의미합니다. 다이키치는 그걸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물류센터 선배들이 의외로 따뜻했던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들 비슷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이런 동료 서사는 영화에서 종종 가볍게 처리되는데, 이 작품은 그 부분을 꽤 진지하게 다뤄서 좋았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는 2010년대 초반 수만 명 규모였고 이는 워킹맘·워킹대디 모두에게 현실적인 장벽이었습니다(출처: 일본 후생노동성). 영화가 담은 다이키치의 고민이 단순한 픽션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 만원 전철 등원길 — 6살 아이에겐 그 자체가 체력 소모
- 야근 잦은 직종의 보육 공백 — 임시 보육원으로 임시방편
- 커리어 포기 — 물류센터로의 부서 이동, 하지만 후회 없음
- 물류센터 선배들의 공감 —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로 빠른 적응
아시다 마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아시다 마나의 연기였습니다. 드라마 마더에서도 충격적이었는데, 버니 드롭에서는 결이 다릅니다. 마더의 린짱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아이였다면, 버니 드롭의 린은 슬픔을 안으로 꾹꾹 누른 아이입니다. 그 차이를 아역배우 한 명이 양쪽 다 소화해 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합니다.
아역배우(child actor)의 한계에 대해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쉽게 말해 아이는 감정의 깊이보다 귀여움에 의존한다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아시다 마나는 그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용담꽃을 드리는 장면, 유치원에서 코우키와 함께 아버지 묘를 찾아가는 장면, 학예회 무대 위에서 다이키치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 어느 하나도 그냥 귀여운 척으로 해결한 장면이 없었습니다.
특히 린이 유치원을 옮긴 뒤 실수를 반복하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류센터 선배들이 "어쩌면 린이 다이키치를 배려하느라 긴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라고 얘기해 주는 장면인데, 그 추측이 맞았습니다. 6살 아이가 보호자에게 짐이 될까 봐 감정을 억누른다는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디테일은 원작 만화를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는 만들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사부 감독은 천공의 차스케, 미스터 롱 등에서도 인물의 내면을 과잉 설명 없이 행동으로 드러내는 연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니 드롭에서도 그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아시다 마나는 그 연출 방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부성애 영화 ?
버니 드롭을 두고 "부성애 영화"라는 평이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 한 단어로 정리하면 놓치는 게 생깁니다. 부성애(父性愛)란 아버지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의 다이키치는 아버지도 아니고 혈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부성애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 선택으로 만들어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사코와의 만남 장면이 저는 이 영화에서 불편하면서도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린의 친모인 만화가 마사코는 오랫동안 무명이었고 생활비를 위해 할아버지 댁 가정부로 일하다 임신과 수상 소식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아이 아버지에게 넘겼다는 것이죠. 인물의 사정은 이해가 되는데 태도는 이해가 안 됐고, 다이키치는 그 온도 차를 느끼며 자신이 직접 입양을 결심합니다.
입양(adoption)이란 혈연관계없이 법적으로 부모와 자녀 관계를 형성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성이 다르면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는 마사코의 말처럼, 이 결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린의 현실적인 삶 전체를 바꾸는 선택이었습니다. 다이키치가 그걸 고민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잠깐 멈추는데, 그 정적이 좋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 영화는 "혈연이 전부"라는 메시지를 담거나, 반대로 "혈연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극단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니 드롭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다이키치와 린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뛰고, 서로를 기다리는 하루하루의 축적이 가족을 만든다고 보여줬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족영화 분류 기준에서도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적 유대를 핵심 요소로 정의하는데(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는 그 정의를 행동으로 채워낸 작품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버니 드롭 원작 만화랑 영화 내용이 많이 다른가요?
A. 원작 만화 토끼 드롭스는 시간이 흐른 뒤의 전개가 영화와 상당히 다르게 전개됩니다. 영화는 린과 다이키치의 육아 분투기 초반부를 중심으로 구성했고, 원작보다 스토리가 훨씬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원작의 후반부가 불편하셨던 분들도 영화는 무리 없이 볼 수 있습니다.
Q. 아시다 마나가 나온 다른 작품도 비슷한 분위기인가요?
A. 드라마 마더는 아동 학대라는 훨씬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버니 드롭보다 훨씬 강도가 셉니다. 버니 드롭이 따뜻하고 잔잔한 힐링이라면, 마더는 감정적으로 꽤 소진되는 작품입니다. 마더를 먼저 보고 버니 드롭으로 오면 아시다 마나의 연기 스펙트럼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Q. 영화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해피엔딩인가요?
A. 학예회를 끝으로 린의 환한 미소가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극적인 사건 해결보다는 두 사람의 일상이 자리 잡은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열린 결말이라기보다는 잔잔한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다만 마사코의 마지막 표정이 조용히 여운을 남깁니다.
Q. 아이 없는 사람이 봐도 공감이 되는 영화인가요?
A. 충분히 그렇습니다. 육아 경험이 없어도 다이키치의 당혹감과 보람이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육아의 디테일보다는 낯선 책임을 떠안은 사람이 그 무게에 적응해가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중심이기 때문에, 누구든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습니다.
결론
버니 드롭은 육아의 고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던 건 아시다 마나 덕분이 컸고, 보고 나서 먹먹했던 건 다이키치와 린의 하루하루가 너무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리얼한 육아의 무게감을 기대하고 보시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따뜻한 필터가 필요한 날도 있습니다. 지쳐 있을 때, 혹은 사람이 그리울 때 다시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마더를 봤다면 버니 드롭으로, 버니 드롭을 봤다면 다시 처음부터 — 저는 그 순서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