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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봤을 때 솔직히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레이스와 프릴로 가득한 로리타 드레스를 입은 소녀 포스터가 영 유치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스쿠터를 타는 폭주족 소녀와의 우정'이라는 줄거리 한 줄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불량공주 모모코》(2004)는 그렇게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감상한 영화인데, 보고 나서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로리타 패션과 양키 문화
처음 이 영화를 보면 '색깔이 지나치다'는 느낌부터 옵니다. 화면은 지나치게 선명하고, 인물들은 현실보다 만화 캐릭터에 가깝게 움직입니다. 애니메이션이 불쑥 끼어들고, 장면이 갑자기 빨라지거나 되감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는데, 보다 보니 이 연출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본의 평범한 지방도시 시모츠마를 나카시마 감독은 팝아트 배경처럼 만들어버립니다. 가장 평범한 공간이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이건 모모코가 그 공간을 얼마나 지루하게 느끼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치라고 저는 봤습니다. 일본 영화 비평에서도 나카시마가 강렬한 색채, 빠른 편집, 되감기 기법을 결합해 시모츠마를 초현실적 세계로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IMDb, Kamikaze Girls).
이 영화에서 핵심 개념은 하위문화(subculture)의 충돌입니다. 여기서 하위문화란 주류 사회와 구분되는 고유한 가치관·패션·행동 양식을 공유하는 집단 문화를 말합니다. 모모코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Rococo) 문화를 동경하며 로리타 패션을 고집하고, 이치코는 일본의 양키(Yankii) 문화 — 즉 폭주족과 특공복으로 대표되는 반항적 청소년 하위문화 — 에 속해 있습니다. 겉보기엔 정반대인 두 문화가 한 영화 안에서 충돌하는 구도입니다.
재미있는 건 두 사람의 이름입니다. 모모코의 '모모'는 복숭아, 이치코의 본명 '이치고'는 딸기를 뜻합니다. 둘 다 과일 이름인데, 둘의 성격처럼 색깔과 질감이 전혀 다르죠. 이치코가 자기 이름을 부끄러워한다는 설정도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디테일이었습니다.
모모코의 드레스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
로리타 패션(Lolita Fashion)이란 빅토리아 시대와 로코코 시대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일본 발 스트리트 패션으로, 레이스·프릴·리본·양산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단순히 귀여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특정 미학과 가치관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출처: The Japan Times).
모모코에게 드레스는 자기 정체성의 언어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선언을 옷으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업을 잃어 드레스를 살 수 없게 됐을 때, 모모코가 짝퉁 명품을 직접 팔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처럼 읽혔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납득이 갔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치코의 특공복(特攻服)도 마찬가지입니다. 특공복이란 폭주족 구성원들이 집단 소속감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입는 수놓인 점프수트 형태의 의복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결국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정해놓은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는 말을 각자의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모모코 → 로리타 패션, 로코코 미학, 고독을 선택한 독립성
- 이치코 → 특공복, 양키 문화, 관계에 매달리는 외로움
- 공통점 → 주류 사회의 표준을 거부하는 하위문화적 자기표현
서로를 바꾸지 않는 우정
많은 성장 영화에서 우정은 '변화'로 정의됩니다. 거칠던 사람이 부드러워지고, 냉정했던 사람이 따뜻해지는 식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서사를 볼 때마다 뭔가 불편했습니다. 사람이 변한 게 성장인지, 그냥 상대방에게 맞춰간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불량공주 모모코》는 그런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모코는 끝까지 모모코이고, 이치코는 끝까지 이치코입니다. 그런데도 둘은 친구가 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모코가 처음으로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성껏 자수를 놓은 특공복을 받은 이치코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모모코는 "야생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던 제가 갑자기 울고 싶어졌습니다. 수면 부족인가요?"라고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수면 부족으로 착각하는 이 대사가 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타인에게 그토록 무관심했던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치코가 모모코에 대해 하는 대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혼자서 서 있어. 자기가 믿는 규칙을 지키면서. 무리 지어 다니지 않으면 달리지도 못하는 너희 따위와 격이 다르다고." 많은 영화에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인물은 '사실은 외롭지만 상처받기 싫어서 고립을 선택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저는 그런 설정을 볼 때마다 왜 독립심을 결핍의 결과로만 설명하려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모모코의 독립적 성향을 오히려 이치코의 입을 빌려 하나의 장점으로 인정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이치코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여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모모코가 뒤를 돌아주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우는 대신 등을 돌려 주는 연출 — 저는 이게 훨씬 더 진짜 우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상대방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 방식대로 배려해주는 것이니까요.
케지메와 히미코, 영화의 숨겨진 유머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폭주족 대결 장면도 볼거리입니다. 케지메(けじめ)란 폭주족이나 야쿠자 문화에서 잘못이나 탈퇴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치코가 폭주족을 탈퇴하려 하자 새 리더 미코가 케지메를 요구하는데, 미코가 들먹이는 전설의 영웅 히미코가 사실 이치코가 지어낸 허구의 인물이라는 반전이 유쾌했습니다.
이치코를 구하러 온 모모코가 폭주족 말투를 흉내 내며 거짓말로 위기를 돌파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순수한 웃음 포인트였습니다. 우아한 로리타 드레스를 입고 껄렁한 말투를 구사하는 모모코의 모습이 시각적으로도 꽤 강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불량공주 모모코 어느 나이대가 보기 좋은 영화인가요?
A. 제 경험상 10대 후반~20대 초반 감성에 가장 잘 맞는 영화입니다. 자신이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는 분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만 B급 연출 특유의 과장된 톤이 취향을 많이 탑니다.
Q. 로리타 패션을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나요?
A.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로리타 패션이 영화의 시각적 중심이긴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나답게 사는 것'과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르고 봐도 드레스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Q.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다른 작품도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이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됩니다. 두 작품 모두 현실의 고독을 극단적인 색채와 음악으로 포장하는 방식을 씁니다. 다만 《모모코》가 유쾌하게 끝난다면, 《마츠코》는 훨씬 비극적으로 흘러가니 감상 후 감정 소비가 다를 수 있습니다.
Q. 후카다 쿄코와 츠치야 안나의 연기 어느 쪽이 더 인상적이었나요?
A. 둘 다 제 역할에 딱 맞았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츠치야 안나가 연기한 이치코에 더 끌렸습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껌을 씹으며 스쿠터를 타고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캐릭터가 바로 살아났거든요. 후카다 쿄코의 모모코는 귀여운 외모와 쿨한 말투의 대비가 묘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결론
《불량공주 모모코》는 처음엔 정신없고 유치해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움 안에 꽤 조용한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나는 나답게 살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나카시마 테츠야는 그 질문에 거창한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오토바이에 올라탄 소녀를 나란히 세워놓을 뿐입니다.
폭주족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가, 우정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편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이어서 보시길 권합니다. 두 영화를 나란히 보면 나카시마 감독이 어떤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