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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영화 제목인지 의심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라니, 막장 드라마 부제목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꽤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사키사카 이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소재만 놓고 보면 자극적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조용하고 섬세한 청춘 로맨스 영화입니다.

엇갈린 감정이 만드는 줄거리
처음에는 전형적인 청춘 멜로겠거니 싶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를 대충 훑었을 때만 해도 "짝사랑 네 명짜리 버전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 영화의 핵심은 단순한 삼각관계나 사각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야마모토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이치하라 유나(후쿠모토 리코), 정반대 성격의 두 소녀가 같은 아파트 이웃으로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아카리는 밝고 주도적인 성격으로 어디서든 중심이 되는 타입이고, 유나는 어릴 때부터 동화 속 왕자님을 꿈꿔온 소극적인 소녀입니다. 이 두 사람이 절친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서, 저는 초반부터 꽤 몰입했습니다.
문제는 유나가 꿈에 그리던 왕자님이 아카리의 의붓동생 야마모토 리오(키타무라 타쿠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여기서 '의붓남매(step-siblings)'라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아카리와 리오는 부모님의 재혼 이전부터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남매가 되어버리면서 그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아카리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녀는 리오의 짝사랑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새로 생긴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리오를 차갑게 밀어냅니다. 감정을 숨기는 게 아니라, 감정을 '없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죠. 하마베 미나미 배우가 이 '밝음 뒤에 숨긴 쓸쓸함'을 정말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억지로 밝게 웃는 장면에서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한편 유나는 리오에게 고백하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소꿉친구 이누이 카즈오미(아카소 에이지)가 아카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네 명의 시선이 각자 다른 곳을 향하는 이 구조, 이른바 '엇갈린 감정의 연쇄(unrequited love chain)'가 이 영화의 뼈대입니다. 쉽게 말해 A가 B를 좋아하는데 B는 C를 보고 있고, C는 D를 마음에 두는 형태입니다.
네 캐릭터의 감정이 모두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다뤄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주인공이 아카리처럼 보이지만, 유나의 성장 서사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고백하는 유나의 장면은,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인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 아카리(하마베 미나미): 겉으로는 밝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인물. 가족의 평화를 위해 리오를 밀어낸다
- 리오(키타무라 타쿠미): 아카리를 향한 짝사랑을 품은 채 의붓남매 관계를 견뎌내야 하는 인물
- 유나(후쿠모토 리코): 소극적이었지만 사랑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는 인물
- 카즈오미(아카소 에이지): 유나의 소꿉친구이자 아카리에게 끌리는 인물. 감정에 솔직한 편
캐릭터와 영상미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던 건 캐스팅 때문이었습니다. 하마베 미나미와 키타무라 타쿠미, 이 두 배우는 2017년 개봉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함께한 두 사람이 이번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의붓남매로 다시 만난 것이죠. 팬들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또다시 가슴 아픈 관계가 예고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이번 영화를 보면서 특히 눈여겨본 건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영상 미학(visual aesthetics)입니다. 영상 미학이란 단순히 예쁜 화면을 넘어서,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눈부신 교정의 햇살, 여름 축제의 불빛, 빗속의 거리까지, 모든 배경이 캐릭터의 내면 감정과 맞물려 연출됩니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건 비 오는 장면에서 유나가 고백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빗소리가 대사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후쿠모토 리코 배우의 연기도 따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소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과장하면 답답해 보이고, 너무 조용하면 존재감이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후쿠모토 리코는 유나의 소심함과 용기가 공존하는 순간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러 가는 유나의 발걸음은, 솔직히 그냥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주제곡 '115만 킬로의 필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인기 밴드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이 영화를 위해 직접 참여한 곡입니다. 오피셜히게단디즘은 J-POP 씬에서 '사랑이라 말할 수밖에 없어', '프리텐더' 등으로 잘 알려진 밴드로, 섬세한 감성의 가사와 풍성한 사운드가 특징입니다(출처: Sony Music Japan - Official髭男dism). 이 곡이 엔딩에 흘러나오는 순간, 영화 전체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봤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분도 가사만 읽어도 이 이야기가 어떤 온도를 가진 영화인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원작 만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는 사키사카 이오 작가의 작품으로, 일본 쇼가쿠칸에서 출판된 마가렛 연재만화입니다. 사키사카 이오는 '푸른 봄을 지나서' 등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로, 청춘 로맨스 장르에서 특유의 감성적인 작화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강점으로 합니다(출처: 週刊少年サンデー - 사키사카 이오 작가 소개). 원작 팬들 사이에서도 영화화 완성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전혀 가볍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 영화는 조용하게, 하지만 꽤 깊이 있게 이야기합니다. 청춘 로맨스 장르가 보통 설레는 감정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무겁게 만드는가'에 더 집중합니다. 그 무게가 공감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작 만화를 안 봐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나요?
A. 영화만 봐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네 캐릭터의 관계와 감정선이 영화 안에서 단계적으로 잘 설명되기 때문에, 원작을 모르는 분도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작을 먼저 읽으면 캐릭터의 내면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하마베 미나미와 키타무라 타쿠미가 전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어떻게 다른가요?
A.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는 비극적인 결말로 향하는 두 사람의 관계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의붓남매라는 설정이 전혀 다른 종류의 아픔을 만들어냅니다. 전작을 본 관객이라면 두 배우의 재회 자체에서 오는 감정이 하나 더 추가되는 느낌입니다.
Q. 주제곡 '115만 킬로의 필름'은 따로 들을 수 있나요?
A. 오피셜히게단디즘의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어 있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을 다시 들으면 가사 한 줄 한 줄이 영화 장면과 겹쳐 보이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Q. 이 영화,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해소되는 방식보다는 각 인물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기대한다면 다소 여운이 남는 결말일 수 있습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감정을 꾹 눌러 참는 아카리의 눈빛이었습니다. 소재만 보면 막장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를 열여섯, 열일곱 살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