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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이주하면 삶이 단순해지고 행복해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영화 <선셋 선라이즈>는 낚시를 위해 도쿄를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저는 보는 내내 "이게 로맨스 영화인지, 일본 사회 다큐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키야(空き家), 즉 '빈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고 나면 한국 얘기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아키야(빈집문제): 영화가 건드린 진짜 사회 문제
아키야(空き家)란 말 그대로 일본어로 '빈 집'을 뜻합니다. 여기서 아키야 문제란 단순히 집이 비어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령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결합하면서 지방과 교외의 주택이 대규모로 방치되는 구조적 사회 현상을 가리킵니다.
일본 전체 주택 중 아키야 비율은 현재 13%에 달합니다. 숫자로만 보면 낯설지만, 쉽게 말해 길을 걷다 만나는 집 열 채 중 한 채 이상이 사람 없이 그냥 서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 특유의 '집은 소모품' 인식입니다. 서양이 건물 자체에 가치를 두는 반면, 일본은 토지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수십 년이 지난 주택은 자산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부모가 살던 집이 자녀에게 상속되어도 팔리지도, 철거하기도 어렵습니다. 높은 철거 비용과 유품 처리 문제가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저출산·고령화(少子高齢化)의 가속입니다. 여기서 저출산·고령화란 출생률이 낮아지고 동시에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지방 마을이 소멸 위기에 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본이 먼저 겪고 있는 이 문제는, 솔직히 말해 한국도 10년 안에 정면으로 마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아키야 대책 특별조치법'을 제정했습니다. 지자체가 방치된 빈집에 관리를 권고하고, 개선이 없으면 명령과 벌금, 강제 조치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법입니다. 또한 '특정 공가(特定空き家)' 지정 제도도 운영 중입니다. 여기서 특정 공가란 위험하거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빈집을 지자체가 공식 지정하는 것으로, 이 경우 기존에 적용되던 재산세 감면 혜택이 사라지면서 소유자에게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아키야뱅크'라는 제도였습니다. 많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이 플랫폼은 빈집 정보를 모아 집주인과 이용 희망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대부분의 매물을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하게 제공합니다. 어린 자녀나 고령자를 둔 가구에게는 보수 비용 지원까지 이뤄지기도 합니다(출처: 일본 국토교통성 아키야 대책 안내).
- 아키야 비율: 일본 전체 주택의 약 13%가 빈집 상태
- 원인 ①: 토지 중심 가치관으로 인해 노후 주택의 자산 가치 급락
- 원인 ②: 저출산·고령화로 지방 인구 유출 가속화
- 대책 ①: 2015년 아키야 대책 특별조치법 제정 — 지자체의 강제 철거 권한 부여
- 대책 ②: 특정 공가 지정으로 재산세 혜택 박탈, 소유자에 압박
- 대책 ③: 아키야뱅크를 통해 빈집 정보 공개 및 매칭 서비스 운영
힐링무비로서의 선셋 선라이즈: 따뜻하지만 순진한
스다 마사키라는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제대로 봤습니다. 솔직히 첫인상은 "그렇게까지 잘생긴 배우는 아니구나" 정도였는데, 보다 보니 왜 일본 내에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지 납득이 갔습니다. 자칫하면 민폐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신사쿠를 밉지 않게, 오히려 응원하게 만드는 건 순전히 스다 마사키 본인의 공이라고 봅니다.
이노우에 마오는 <꽃보다 남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동일본 대지진(東日本大震災)으로 가족을 잃은 36세 여성 모모카를 연기합니다. 여기서 동일본 대지진이란 2011년 3월 발생한 규모 9.0의 초대형 지진으로, 도호쿠(東北) 지역을 중심으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은 일본 현대사 최대의 재난입니다. 영화는 이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모모카가 집을 팔지 못하는 이유,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이유가 결국 그 기억과 닿아 있다는 것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의 영화는 결말이 뻔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영화는 적어도 배경만큼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이라는 또 다른 재난을 겪는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의 거대한 재난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구도는 단순하지만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제가 좀 불편했던 건 현실성의 문제였습니다. 도쿄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고 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바닷가 마을에 흔쾌히 내려가는 설정, 게다가 그 남자가 인프라라고는 거의 없는 시골을 너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판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사람이 떠나가는 마을인데, 재택근무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는 빈집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개인적인 해결책입니다.
쿠도 칸쿠로의 각본 특유의 엇박자 유머는 분명 살아 있습니다. 미야기현의 로컬 미식인 '메카지키의 하모니카(황새치 하모니카 조림)'나 '모우카노호시(상어 심장 요리)' 같은 생소한 음식들이 화면을 채울 때는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됩니다. 다만 전체적인 러닝타임은 제 기준으로 약 25분 정도는 덜어냈어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일본 힐링 무비 특유의 잔잔한 호흡에 익숙하지 않다면 수면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 장르로 보면 귀농·귀촌 서사(移住 서사)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귀농·귀촌 서사란 도시인이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공동체에 융합되는 과정을 그린 서사 구조를 가리키며, 일본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을 만큼 꾸준히 소비되는 소재입니다(출처: 일본 문화청). 그런데 이런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 시골 사람은 무조건 순박하고 따뜻하다는 프레임을 이 영화도 그대로 가져갑니다. 제 경험상 이런 단순화는 현실의 시골 텃세나 공동체 진입 장벽을 너무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선셋 선라이즈는 원작이 있는 영화인가요?
A. 네,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야기 구조가 비교적 탄탄한 편이고, 아키야 문제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회적 배경도 소설에서부터 충실히 다루어진 요소입니다. 다만 원작 팬이 아니어도 영화만으로 충분히 맥락이 전달됩니다.
Q. 아키야뱅크는 외국인도 이용할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외국인도 이용 가능하지만, 지자체마다 조건이 다르고 일본어 서류 처리와 실거주 요건 등의 장벽이 있습니다.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접근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수수료나 세금 부담이 생길 수 있어서, 제 경험상 사전에 해당 지자체 창구에 직접 문의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Q. 영화가 자극적인 장면 없이 너무 심심하지 않나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일본 힐링 무비 특유의 잔잔한 호흡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후반부에서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도 칸쿠로 각본의 엇박자 유머가 중간중간 살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극적인 재미보다 여운을 쌓아가는 방식의 영화입니다.
Q. 한국도 빈집 문제가 심각한가요?
A. 아직 일본만큼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지방 소도시와 농촌의 빈집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일본이 2015년에 법제화를 서두른 것을 감안하면, 한국도 조만간 유사한 구조적 대응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결론
<선셋 선라이즈>는 제가 처음 기대했던 것과 결이 다소 달랐습니다. 로맨스를 기대하면 밋밋하고, 사회 문제 영화를 기대하면 너무 낙관적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이 영화의 자리가 있습니다. 아키야 문제를 영화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스다 마사키라는 배우의 설득력이 그 허술한 현실성을 상당 부분 메꿔줍니다.
일본의 빈집 문제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보셨다면, 혹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도호쿠 지역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 자극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를 즐기는 편이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제법 따뜻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