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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한 번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라고 말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비정전〉을 처음 봤을 때 오히려 그 반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비가 수리진에게 건네는 1분의 약속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상실을 미리 박제해두는 일종의 자기방어였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1990년 작 〈아비정전〉은 뿌리 없는 한 청년이 사랑도 정체성도 잃어가는 과정을 초록빛 습기 속에 가두어 둔 영화입니다.

발 없는 새 — 처음부터 예고된 결말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결말을 슬며시 내보입니다. 안개 낀 열대 밀림이 느린 카메라에 실려 흐르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로 제목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 밀림이 아비가 죽기 직전 기차 차창 밖으로 바라본 마지막 풍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던 느낌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 구조는 영화 내내 반복되는 '발 없는 새'의 우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날아오르는 순간 이미 추락이 예정된 새, 땅에 닿는 단 한 번이 곧 죽음인 새. 이 우화를 단순한 대사로 흘려보내지 않고 영화의 형식 자체에 새겨 넣은 것이 왕가위의 방식입니다. 순환적 구조(circular narrative), 즉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과거를 더듬어가는 이 방식은 관객이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시간 감각 안으로 직접 끌려들어 가게 만듭니다. 여기서 순환적 구조란 이야기의 끝이 처음과 연결되어 선형으로 진행되지 않는 서사 방식을 뜻합니다.
이 영화를 두고 "줄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뚜렷한 사건은 없지만 감정의 밀도는 어느 영화보다 촘촘합니다. 결국 〈아비정전〉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응시한 영화입니다. 출처: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1991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다섯 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당시 흥행 참패가 대중과의 속도 차이였지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방증합니다.
맘보춤 — 초록빛 속의 나르시시즘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장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속옷 차림의 아비가 선풍기 앞에서 거울을 보며 맘보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하비에르 쿠가가 연주한 'Maria Elena'가 흐르는 동안 장국영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오직 거울 속 자신만을 위한 춤. 저는 이 장면이 아비라는 인물의 모든 것을 압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미장센(mise-en-scène)을 가능하게 한 것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색채, 인물의 배치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기법을 말합니다. 도일의 카메라는 화면 전체를 녹슨 듯한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인물들 사이의 빈 공간을 자꾸 끼워 넣어 그들의 거리를 벌려놓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색감이 지나치게 특이하다고 느끼시는데, 저는 오히려 그 비현실적인 초록이 인물들을 과거의 시간에 박제된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왕가위가 유년기 홍콩을 재현하려다 도시 재개발로 실제 공간을 찾지 못해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는 이 색채가 왜 그토록 부유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끊임없이 돌아가지만 아무 데도 데려가지 못하는 선풍기 날개, 끝내 울리지 않는 공중전화 신호음, 재떨이에 쌓이는 크레이븐 A 담배. 이 사물들의 미장센은 정치적 상실감을 넘어 존재론적 고독을 직접 건드립니다.
장국영의 연기를 두고 "그냥 잘생긴 배우의 카리스마"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퇴폐와 우수를 동시에 머금은 표정으로,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한 사람의 내면을 몸 전체로 표현합니다. 이 연기로 홍콩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아비에게 상처 입은 수리진과 루루가 각각 다른 남자에게 상처를 주는 연쇄 구조는, 왕가위가 멜로라는 장르를 통해 증명한 가장 잔인한 진실입니다. 상처는 멈추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로 전염됩니다.
- 크리스토퍼 도일과의 첫 협업 — 이후 왕가위 영화의 시각 언어 확립
- 초록빛 색조 — 인물을 과거 시간에 가두는 미장센 장치
- 맘보춤 장면 — 나르시시즘과 고독이 한 컷으로 응축된 영화사적 명장면
- 라틴 음악(Maria Elena, Perfidia, Jungle Drums) — 정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
엇갈림 — 관계의 기본값
〈아비정전〉에서 맺어지는 커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걸 두고 "그래서 허무하고 결론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정직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왕가위는 엇갈림(missed connection)을 멜로의 실패로 그리지 않고, 존재 자체의 조건으로 봅니다. 엇갈림이란 두 사람의 감정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만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이 예외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본값임을 100분 내내 보여줍니다.
수리진을 짝사랑하게 된 경찰관은 좀처럼 걸려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결국 선원이 되어 홍콩을 떠납니다. 그 텅 빈 공중전화 부스 장면은 제가 영화에서 본 가장 조용한 비극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선원이 필리핀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아비 곁을 지키게 될 때, 영화는 모든 인연이 어긋난 채로도 결국 한 점에서 다시 만난다는 차가운 역설을 완성합니다.
아비의 친어머니와 양어머니라는 이중 모성 구조를 1997년 홍콩 반환의 알레고리로 읽는 해석은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출처: Criterion Collection에서도 이 작품을 홍콩의 정체성 혼란을 담은 시대 초상으로 분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해석이 영화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순수하게 실존적 고독의 이야기로 읽는 독법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은 1990년 홍콩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가 좁은 골방에 불쑥 나타나 2분 30초 동안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트럼프를 주머니에 넣고, 불을 끄고 밖으로 나섭니다. 흥행 참패로 2부작 계획이 무산되면서 이 장면은 영영 완성되지 않을 속편의 예고편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미완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아비는 죽었지만 어딘가 또 다른 방에서 그와 똑같은 남자가 밤을 향해 걸어나갑니다. 화양연화와 2046으로 이어질 거대한 세계의 문이 그렇게 조용히 열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비정전이 개봉 당시 왜 그렇게 혹평을 받았나요?
A. 1990년 홍콩 영화 시장은 누아르와 액션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 장학우, 양조위까지 당대 최고 스타를 모아놓고도 영화 대부분을 걷고 기다리고 침묵하는 인물들로 채웠으니 관객 입장에서 당황한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환불 소동과 유리 파손 사태가 벌어졌다고 전해질 만큼, 기대와 결과물의 간극이 컸습니다.
Q. 왕가위 영화 처음 보는데, 아비정전부터 봐도 괜찮을까요?
A. 입문작으로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영화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이야기를 따라가려 하지 말고 분위기와 감정을 " 마음으로 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를 먼저 보신 뒤 이 영화로 돌아오면, 왕가위 세계의 원점이 어디인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Q. 마지막에 양조위가 갑자기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A. 원래 2부작으로 기획된 영화였는데 흥행 참패로 후속편이 무산되면서, 양조위의 그 장면은 영영 완성되지 않을 속편의 예고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완의 결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아비가 죽어도 어딘가에서 똑같은 남자가 다시 밤을 향해 걸어 나간다는 순환의 암시로 읽으면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아비정전과 화양연화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A. 직접적인 속편 관계는 아니지만, 화양연화의 수리진(장만옥)이 아비정전의 수리진과 같은 이름을 공유합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아비정전, 화양연화, 2046을 왕가위의 비공식 3부작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세 작품 모두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닿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결론
〈아비정전〉을 보고 나서 며칠간 그 초록빛 습기가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습니다. 저도 분명 누군가의 1분을 영원처럼 기억하고, 정작 나를 사랑한 이의 마음은 한참 뒤에야 알아차린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30년이 지나도 매년 4월이면 되살아나는 것은, 아비의 어긋남이 결코 1960년대 홍콩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가위 영화를 처음 접하신다면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부터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보신다면 왕가위의 모든 세계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단번에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발 없는 새의 이야기는, 끝나는 동시에 언제나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