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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이 아니면 가족이 아닐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의문이 남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도둑질로 하루를 버티는 가짜 가족의 해체 과정을 통해 진짜 관계란 무엇인지 묵직하게 던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서스펜스의 정체
영화는 두 남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범죄 스릴러처럼 출발하지만, 이내 분위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오사무와 소년 쇼타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혼자 추위에 떨고 있는 네 살배기 유리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진짜 긴장감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작동하는 감정이 바로 내러티브 서스펜스(Narrative Suspense)입니다. 내러티브 서스펜스란 관객이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그 과정을 멈추지 못하고 지켜보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적 긴장감을 말합니다. 아이를 집에 데려온 행위는 법적으로 명백한 유괴이지만, 온몸에 학대 흔적을 가진 아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발 들키지 말아라"라고 속으로 빌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습니다.
이 가족은 법의 시선으로 보면 범죄 집단입니다. 할머니 하츠에의 연금 6만 엔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오사무는 일용직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칩니다.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고, 아키는 유사 풍속점에서 가짜 사랑을 팝니다. 각자가 선택한 생존 방식은 사회의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낙제점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함께 밥을 먹고, 좁은 방에서 몸을 부비며 잠드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감독은 이 불편한 감정을 관객에게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 오사무(릴리 프랭키): 일용직 노동자이자 비공식 가장,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친 인물
- 노부요(안도 사쿠라): 세탁소 직원, 자신도 학대 피해자였던 과거를 가진 인물
- 하츠에(키키 키린): 연금 수급자, 이 가짜 가족의 실질적인 경제적 기반
- 쇼타: 오사무에게 도둑질을 배운 소년, 도덕적 각성을 겪는 서사의 핵심 축
- 유리/린: 학대 가정에서 구조된 소녀, 이 가족의 균열을 촉발하는 존재
하이퍼리얼리즘 연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 방식을 흔히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고 부릅니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되, 오히려 그 정밀함 때문에 관객이 더 강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연출 미학을 말합니다. 폭발적인 음악도, 극적인 반전도, 관객의 눈물을 짜내려는 인위적 장치도 없습니다.
대신 감독은 미장센(Mise-en-scène)을 채웁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공간 구성을 통해 대사 없이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좁고 낡은 단칸방, 여기저기 쌓인 생활용품들, 비좁은 공간을 나눠 쓰는 몸의 거리감. 이 모든 것이 대사보다 먼저 이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봤을 때 대사가 끝나도 한참 화면을 보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특히 감독은 감정이 가장 팽팽하게 올라오는 순간마다 클로즈업(Close-up Shot)을 선택합니다. 클로즈업이란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화면 가득 담아내는 촬영 기법으로, 배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가 스크린 전체를 압도하게 됩니다. 조금의 거짓도 허용되지 않는 시험대인데, 릴리 프랭키와 안도 사쿠라는 그 위에서 눈부신 연기를 펼쳤습니다.
안도 사쿠라가 취조실에서 뱉어낸 오열 장면, 저는 그 장면 때문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엄마라고 불린 적이 없다"는 노부요의 그 한 마디는 대사가 아니라 상처였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처럼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출처: IMDb, 어느 가족(Shoplifters) 작품 정보에서도 이 영화의 연기와 연출에 대한 평단의 극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가 던진 질문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불편하면서 동시에 뭔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는 그 감성이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끝까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처음엔 조금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핵심 화두는 가족의 정의입니다. 핏줄로 묶인 관계가 가족인지, 아니면 서로를 선택하고 보듬은 관계가 가족인지. 유리의 친부모는 두 달 넘게 아이의 실종을 숨겼습니다. 반면 오사무와 노부요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그 아이를 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가족다운가,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만비키 가족', 즉 좀도둑 가족입니다. 국내 개봉 당시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을 두고 범죄적 뉘앙스를 지우려 한다는 우려가 있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은 오히려 이 공동체를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듭니다.
쇼타가 새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아빠"라고 내뱉는 마지막 장면, 오사무에게 닿지 않은 그 말이 오히려 더 깊이 남았습니다. 닿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진짜였습니다. 출처: 칸 영화제 공식 아카이브에 따르면 이 작품은 2018년 황금종려상 수상과 함께 전 세계 평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느 가족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 원작은 없습니다. 다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 사회의 빈곤 가정 문제, 아동 학대, 연금 부정 수급 등 실제 사회 이슈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허구임에도 이토록 피부에 닿는 것입니다.
Q. 영화 결말에서 유리는 어떻게 됐나요?
A. 유리는 경찰 조사 이후 친어머니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리는 또다시 베란다 난간에 기댄 채 바깥을 바라봅니다.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독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객 각자가 읽어내야 하는 열린 결말이고, 저는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습니다.
Q. 어느 가족 관람 시 주의해야 할 장면이 있나요?
A. 아동 학대 흔적 묘사, 가정 폭력 관련 대화, 성인 업소 근무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입니다. 직접적인 폭력 묘사보다는 암시와 여운을 통해 불편함을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감정적으로 예민하신 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추천 작품이 있나요?
A. <어느 가족>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팎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들이고, 이 감독의 영화는 한 편만 보고 멈추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결론
<어느 가족>은 범죄 영화도, 신파 가족 드라마도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당연하게 써온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그 단어 주변에 쌓아둔 전제들을 하나씩 걷어내는 과정이 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이 영화를 선뜻 꺼내지 못합니다. 감동이라기보다는 질문을 남기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은 불편하고 먹먹한 여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은 날,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면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 한 통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