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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보고 살짝 겁을 먹었습니다. 대체 뭔 이야기길래 2시간 40분이나 하지, 싶어서 초반엔 딴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조금 더 있었으면 했습니다. 요노스케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마음 안에 들어와버렸거든요.

삼바 동아리, 착각, 그리고 요노스케
영화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バブル경제)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버블경제란 실체보다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경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일본은 지가와 주가가 동시에 폭등하며 소비와 욕망이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영화는 그 시대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거리 풍경까지 꼼꼼하게 복원해 놓아서 보는 내내 시대극을 보는 쾌감이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올라온 요노스케는 대학 새내기입니다. 처음 마주친 카토에게 말을 거는 이유가 걸작인데, 돈을 빌린 사람과 착각했다는 겁니다. 카토가 "저 그 사람 아닌데요"라고 하자, 요노스케는 그래도 같이 밥이나 먹자며 따라 나섭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웃음이 터졌는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어이없으면서도 왠지 싫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삼바(Samba) 동아리에 들어간 요노스케가 퍼레이드에 꾸준히 나서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삼바란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유래한 타악기 중심의 군무 음악 장르인데, 이 진지한 표정의 대학생이 삼바 리듬에 맞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예상 밖으로 웃겼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 초반엔 좀 지루하게 봤는데 이미 요노스케한테 빠져있었던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 배경: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 시절 도쿄, 나가사키 출신 대학 신입생 요노스케
- 요노스케 특유의 붙임성 — 착각으로 말 걸고, 어느새 친구가 되는 방식
- 삼바 동아리, 퍼레이드 등 소박한 대학생 일상이 영화의 중심
카토와 수박, 가장 좋아하는 장면
제가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카토와 요노스케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운전학원에서 다시 만나 가까워지는데, 어느 순간부터 요노스케가 카토의 집에 아예 눌러앉다시피 합니다. 요노스케가 일방적으로 쳐들어오고, 카토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구도인데 — 이게 묘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가까운 친구 관계가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결정적인 장면은 카토가 남성을 만나러 공원에 가는 길에도 요노스케가 쫓아오자, 카토가 결국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털어놓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요노스케의 반응이 압권입니다. "그럼 나는 공원에 들어가면 곤란한 거네?" 하고는, 입구에서 수박 먹으며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커밍아웃(coming-out) — 즉 성 정체성을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 — 이라는 무게 있는 순간을 요노스케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깁니다. 카토가 웃음을 터뜨리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습니다.
카토는 그날 결국 공원에 가지 않습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수박을 쪼개 나눠 먹는 여름 장면은, 설명 없이도 두 사람이 진짜 친구가 됐다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었습니다. 훗날 카토가 애인과 저녁을 보내다 요노스케 얘기를 혼자 실실 웃으며 하다가, "아, 너는 요노스케를 모르는구나. 나는 아는데. 왠지 득 본 기분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이 영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코와의 연애, 그리고 밀봉된 첫 필름
쇼코와의 첫 만남은 어이없는 경위로 성사됩니다. 카토를 좋아하는 여학생이 더블 데이트를 추진했는데, 엉뚱하게 곁다리로 낀 두 사람이 이어진 겁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수제버거를 썰어 먹는 대신 빵을 올려 한입에 크게 베어 무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 한 컷에 두 사람의 온도가 다 담겨있다고 느꼈습니다. 격식 없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그게 요노스케가 쇼코에게서 발견한 거였을 테니까요.
요노스케는 경영학도였지만 옆집 사진작가에게 카메라를 빌리면서 사진의 길로 접어듭니다. 쇼코는 "첫 필름을 현상하면 제일 먼저 저한테 보여줘요"라고 하고, 요노스케는 약속합니다. 여기서 필름(film)이란 디지털 이전 시대의 아날로그 사진 매체로, 현상(現像)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이미지가 드러나는 특성 때문에 한 장 한 장에 훨씬 더 큰 무게가 실렸습니다. 그 첫 필름을 쇼코가 실제로 받아보는 건 15년이 흐른 뒤, 그것도 유품으로 전해받는 형태입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 쇼코의 유학이 길어진 건지, 아니면 즐거운 날들이 많아 그냥 그 약속을 둘 다 잊고 있었던 건지 끝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공백이 오히려 더 아팠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는 설명을 다 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빈 곳을 남겨두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시간이 흐른 뒤 쇼코가 조카와 함께 빵 안에 스테이크를 넣어 먹는 장면이 오버랩되는데 — 쇼코도 그 순간 요노스케가 떠올랐을 거라는 걸 대사 없이 알 수 있었습니다.
회상 구조가 만들어낸 것
영화의 구성 방식이 독특합니다. 회상 내러티브(retrospective narrative) — 다시 말해, 현재 시점의 인물들이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 — 를 채택하고 있는데, 여러 인물의 기억이 교차해도 흐름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치하루가 라디오 DJ로서 대본을 읽다 멈추는 장면, 카토가 혼자 실실 웃는 장면, 쇼코가 밀봉된 상자를 받는 장면이 각각 '왜 이 사람이 지금 요노스케를 떠올리게 됐는가'를 자연스럽게 펼쳐 보입니다.
처음에는 매그놀리아나 레퀴엠 같은 앙상블 드라마 — 여러 인물이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한 덩어리로 얽히는 방식 — 와 비슷한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다릅니다. 저 두 영화가 군집이라면, 이 영화는 요노스케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행성처럼 배치된 구조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요노스케라는 사람이 남습니다.
영화 초반, 요노스케가 할머니 장례식에서 주변 사람들이 우는 걸 보며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사람들이 울어줄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질문이 복선이었다는 걸 영화 내내 잊고 있다가, 마지막에야 돌아옵니다. 요노스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잔잔한 반전이었는데, 저는 그 순간 요노스케를 실제로 잃은 사람처럼 멍해졌습니다. 2시간 남짓 동안 그냥 그 사람 곁에 있다 왔구나, 싶은 느낌. 이게 이 영화가 좋은 이유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색감과 미장센(mise-en-scène) — 프레임 안에 배치된 피사체, 조명, 색조 등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시각 요소를 가리키는 영화 용어 — 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필름 느낌이 나는데 의외로 2013년 작이라는 게 신기했고, 매미 소리가 깔리는 여름 장면들은 심신이 안정될 정도로 좋았습니다. 벚꽃이 한창이던 주에 이 영화를 봤는데, 계절이 요노스케와 맞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키타 슈이치 감독이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풀어낸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출처: IMDb, Yonosuke(2013)).
- 회상 내러티브 구조 —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요노스케를 완성
- 미장센 — 2013년 작이지만 아날로그 필름 시대의 색감과 질감을 재현
- 복선으로 돌아오는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라는 질문이 영화 전체를 꿰뚫음
자주 묻는 질문
Q. 요노스케 이야기 러닝타임이 160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솔직히 저도 초반에는 지루했습니다. 삼바 동아리 장면이 이어지고 뚜렷한 갈등도 없어서 '이게 뭔 이야기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카토와 수박 장면 즈음부터는 시계를 보지 않게 됐습니다. 영화의 리듬에 적응하고 나면 160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집니다.
Q. 요노스케 이야기는 실화 기반 영화인가요?
A. 네, 저도 다 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 원작입니다. 吉田修一(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오키타 슈이치 감독이 영화화했습니다(출처: 키노쿠니야 북스). 실화 기반이라는 걸 알고 나니 요노스케의 마지막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Q. 요노스케 이야기에서 쇼코가 첫 필름을 15년 뒤에 받는 이유가 설명되나요?
A. 영화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언제 어떻게 헤어졌는지, 왜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는지는 모두 공백으로 남겨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여백이 오히려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데, 이 영화가 딱 그렇습니다.
Q. 매그놀리아나 레퀴엠과 비슷한 영화인가요?
A.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는 점에서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릅니다. 매그놀리아와 레퀴엠이 인물들이 서로 얽히는 앙상블 구조라면, 요노스케 이야기는 요노스케 한 사람을 축으로 주변 인물들이 그를 떠올리는 방식입니다. 훨씬 조용하고 따뜻한 영화입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요노스케를 떠올리면 별수 없이 웃음이 난다고 카토가 말하는데, 저도 그렇게 됐습니다.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남의 집에 눌러앉고, 착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인데 — 그 구김 없는 인간미 때문에 웃음이 납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의 마지막이 더 허전합니다.
요노스케 이야기,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어느 순간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아 버리는 그런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