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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르누아르 (성장 드라마, 반자전적, 칸영화제)

lime22 2026. 10. 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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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잔잔한 일본 가족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서는 내내 말을 잃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신작 《르누아르》는, 11세 소녀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조용하고 담담하지만, 그 여운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일본영화 르누아르 (성장 드라마, 반자전적, 칸영화제)
    일본영화 르누아르 (성장 드라마, 반자전적, 칸영화제)

     

    반자전적 성장 드라마

    일반적으로 성장 드라마라고 하면, 밝고 뜨거운 청춘의 서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르누아르》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후키(스즈키 유이)가 성장하는 방식은 밝지도, 희망차지도 않습니다. 조금 서글프고, 조금 잔인하며, 무엇보다 너무 이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7년, 버블 경제(bubble economy) 시기의 일본입니다. 버블 경제란 자산 가격이 실제 가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팽창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내면적으로는 단절되고 공허한 시대였는데, 그 사회적 질감이 후키 가족의 이야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물질은 넘치지만, 가족 사이의 감정은 자꾸만 어긋납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 케이지(릴리 프랭키)는 병원을 오갑니다. 어머니 우타코(이시다 히카리)는 간병과 직장을 병행하며 감정적으로 점점 닳아갑니다. 그 사이에 끼인 후키는 어른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소외감을 조용히 쌓아갑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죽음, 최면, 심령 현상 같은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탐닉으로 채웁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인터뷰에서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느꼈던 감정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영화가 반자전적(semi-autobiographical) 작품이라는 사실은, 화면 속 감정들이 왜 그렇게 세밀하고 날카로운지를 설명해줍니다. 반자전적이란 실제 경험을 일부 반영하되 허구와 섞어 재구성한 방식을 의미합니다. 제가 봤을 때 느꼈던 그 생생한 질감이, 감독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영화가 오래 남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아버지의 말라가는 얼굴, 병실의 공기,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 죽음은 대사로 등장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습니다. 어렴풋이 느끼지만 아직 언어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 후키가 그걸 대신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영화 《벌새》나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난 뒤와 비슷한 감각이었습니다.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해되어버리는 순간, 그게 성장의 한 장면이라는 걸.

    • 감독: 하야카와 치에 — 본인의 유년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한 반자전적 오리지널 시나리오
    • 배경: 1987년 버블 경제 시기 도쿄 교외 — 물질적 풍요와 내면적 단절이 공존하는 시대
    • 주요 출연: 스즈키 유이(후키), 릴리 프랭키(아버지 케이지), 이시다 히카리(어머니 우타코)
    • 성과: 제78회 칸 영화제(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경쟁 부문 공식 초청
    요약: 《르누아르》는 감독 자신의 기억에서 출발한 반자전적 성장 드라마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11세 소녀의 이야기를 버블 경제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칸 영화제 경쟁작이 택한 방식

    일반적으로 영화 제목은 내용을 직접 암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반대를 선택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소녀의 이야기에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이름을 붙이는 것, 그 간극 자체가 이 영화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란 빛과 순간의 감각을 포착하는 화풍으로, 선명한 윤곽보다는 흐릿한 인상과 분위기를 중시합니다. 이 개념은 영화 《르누아르》의 연출 방식과 정확히 겹칩니다. 죽음도, 감정도, 가족 사이의 균열도 또렷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공기처럼 스며들어 남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를 "당한" 느낌을 받은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르누아르의 '귀여운 이렌느' 같은 서양 명화 복제품이 신문 광고나 통신 판매를 통해 흔하게 유통됐다고 합니다. 감독 역시 어린 시절 부모에게 그 그림을 선물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속에서 후키가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 르누아르 그림을 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소품 이상의 무게를 가집니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붙잡으려는 몸짓이기도 하니까요.

    릴리 프랭키가 연기하는 아버지 케이지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한 캐릭터였습니다. 생의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상태를 그가 표현하는 방식은 과장 없이, 거의 물처럼 투명합니다. 그루밍(grooming) — 즉 성인이 아동에게 신뢰를 쌓아 위험한 관계로 유도하는 행위 — 의 위협에 노출되는 후키의 에피소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시 극적 장치로만 소비되지 않고 외로운 아이가 얼마나 쉽게 위험 앞에 놓일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제7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영화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더 잘 이해됩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페이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말로 정의 내리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태도.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은 언어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영화 전체가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가장 정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약: 제목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의 흐릿한 감각처럼 설명 대신 감각으로 남는 영화의 연출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빛나는 찰나를 붙잡으려는 아이의 몸짓을 상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본영화 르누아르는 원작 소설이나 만화가 있나요?

    A. 없습니다. 《르누아르》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직접 쓴 완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입니다. 감독 본인의 유년 시절 경험, 특히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봤던 기억이 강하게 반영된 반자전적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칸 경쟁작들이 원작 기반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의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Q. 영화 르누아르,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많은 편인가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었습니다. 죽음과 고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영화는 이를 격정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감정을 쌓아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화면보다 잔잔한 여운이 긴 영화를 선호하는 분께 더 잘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Q. 릴리 프랭키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인가요?

    A. 릴리 프랭키는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 케이지 역을 맡았습니다. 이 배우 하면 강렬하거나 개성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제 경험상 《르누아르》에서 그의 연기는 정반대입니다. 생의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상태를 과장 없이, 거의 투명하게 표현합니다. 낯선 릴리 프랭키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Q.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면 어렵거나 난해한 영화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칸 경쟁 부문 작품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저는 《르누아르》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11세 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해보다는 감각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영화입니다. 《벌새》나 《남매의 여름밤》을 즐겁게 본 적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르누아르》는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입니다. 죽음을 소재로 삼지만 죽음을 설명하지 않고, 성장을 그리지만 성장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청춘의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빨리 잃어본 사람이라면, 후키의 그 이른 깨달음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인상주의 화풍처럼 흐릿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남는 영화입니다. 담담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여름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