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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감정정리가 안됐습니다. 1945년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딱 24시간 안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결정되고 그것을 막으려는 쿠데타가 벌어진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거든요. 권하고 싶은데 쉽게 권할 수가 없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태평양전쟁의 끝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각나게 한 것은, 일본이 이미 사실상 패전 상태였음에도 내부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버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Pacific War)은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태평양전쟁이란 일본 제국이 미국·영국·네덜란드 등 연합국을 상대로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벌인 전쟁을 가리킵니다. 초반의 기세는 일본 쪽에 있었지만, 1942년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혔고 이후 과달카날, 사이판, 괌을 차례로 잃으면서 일본 본토는 대규모 공습에 노출됩니다. 1945년에는 일본 영토인 이오지마(硫黃島, 유황도)와 오키나와마저 미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던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를 동원했습니다. 가미카제란 조종사가 탑재된 항공기를 그대로 적 함선에 충돌시키는 자폭 전술로, 사실상 조직적인 강제 자살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사흘 뒤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의 저항력은 완전히 꺾이게 됩니다.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의 장제스 주석이 포츠담 회의에서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을 발표했습니다. 포츠담 선언이란 일본 제국에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연합국의 공동 선언으로, 전범 처벌, 군비 해제, 점령지 반환, 일본 주권 범위 제한 등을 명시한 문서입니다. 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은 곧 무조건 항복을 의미했습니다(출처: UN 공식 문서 - 포츠담 선언 원문).
- 일본 주권을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 및 부속 도서로 제한
- 카이로 선언에 따라 한국·대만 등 점령지에서 완전 철수
- 일본군의 완전 무장해제 후 귀환 허용
- 전쟁 책임자에 대한 엄격한 사법 처리
- 평화적 산업 경제 유지는 허용, 재무장 관련 산업 제외
궁성사건, 광기와 냉정함 사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장면은, 사실 쿠데타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항복 전날까지도 "정신력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무섭다기보다는 기묘하게 슬펐습니다.
1945년 8월 14일 각료회의에서 포츠담 선언 수락이 결정되자, 군부 소장파 장교들이 즉각 반발합니다. 이들은 근위 제1사단의 사단장을 살해하고 사단장 명령서를 위조하여 2개 연대를 이끌고 황궁을 점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궁성사건(宮城事件)입니다. 궁성사건이란 쇼와 천황의 항복 연설 녹음 방송을 저지하기 위해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일본 현대사에서 군부가 천황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선 유일무이한 사례입니다(출처: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 헌법 관련 역사 문서).
반란군은 천황의 항복 연설문 녹음 레코드를 찾아 황궁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한편 아쯔기 공군기지의 지휘관은 다음날 항복 선언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가미카제 특공대를 출동시켰고, 학도의용군을 이끌고 각료들의 집을 습격한 부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영화가 이 반란군을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옥쇄(玉碎)라는 개념이 이들을 움직인 핵심 논리였는데, 옥쇄란 원래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전장에서 포로가 되기보다 죽음을 택하라는 군부의 명령 논리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이 단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가뜨렸는지, 영화는 그걸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새벽이 되면서 군부 간부들의 설득으로 황궁수비대와 아쯔기 의용군은 반란을 포기하고 해산합니다.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자들이 천황의 목소리 하나에 총을 내려놓은 겁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더 씁쓸했습니다. 그 에너지가 처음부터 항복을 향했다면, 많은 목숨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싶었습니다.
항복 선언이 남긴 것
제가 이 영화를 쉽게 권하지 못했던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 전쟁영화에 흔히 따라붙는 말, "피해를 준 타인은 빼고 자기들 고생한 이야기만 한다"는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일본의 가장 긴 하루〉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그래도 일본은 멋있었다"는 식의 자존심 세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하려는 것은 단 하나, 한 번 시작된 비극이 개개인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각본을 맡은 하시모토 시노부는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할복〉 등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을 쓴 인물입니다. 논픽션을 드라마로 옮기는 데 있어 그가 선택한 방식은, 인물 한 명에 몰입시키는 대신 사건들이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구조였습니다. 그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다 보면 그 구조 자체가 박력이었습니다.
올스타 캐스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육군대신 아나미 역의 미후네 도시로는, 구로사와 영화에서 보아온 그 강렬하고 비극적인 인물의 본을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가 보고 느낀 건, 이 배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무게가 절반은 줄었을 거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한즈 가즈토시의 동명 논픽션입니다. 국내에서는 1996년에 출간된 후 현재 절판 상태이나 중고로는 구할 수 있습니다. 읽어보신 분이라면 영화가 원작의 건조한 서술 방식을 얼마나 정교하게 리듬감 있는 드라마로 살려냈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항복 선언 이후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했을 때, 그토록 옥쇄를 외치던 군인과 국민 중 단 한 명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대본영(大本營), 즉 일본 군부의 최고 통수기관이 마지막까지 병사와 민간인에게 죽음을 강요했지만, 막상 그 간부들 중 항복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 비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본의 가장 긴 하루〉 1967년판과 2015년판은 어떻게 다른가요?
A. 1967년판은 사건 전체의 얼개를 군상극 형식으로 따라가는 반면, 2015년판은 특정 인물에 집중하는 현대적 화법을 택했습니다. 제가 본 것은 1967년판인데, 올스타 캐스팅과 하시모토 시노부의 각본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구조미는 1967년판만의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Q. 궁성사건은 실제 역사에서 어느 정도 규모였나요?
A. 근위 제1사단 소속 소장파 장교들이 사단장을 살해하고 명령서를 위조하여 2개 연대 병력으로 황궁을 점령한 실제 사건입니다. 쇼와 천황의 항복 연설 녹음 레코드를 찾으려 황궁 전체를 수색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새벽 무렵 상급 간부들의 설득으로 해산했습니다. 일본 현대사에서 군부가 천황의 결정에 직접 저항한 유일한 쿠데타 시도로 기록됩니다.
Q. 이 영화가 일본 입장을 일방적으로 미화한다는 비판은 없나요?
A.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도 있다는 걸 저도 압니다. 다만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전쟁을 불가피한 비극으로 포장하거나 쿠데타 세력을 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대본영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옥쇄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살아남은 현실을 담담히 드러내는 방식이, 어떤 직접적인 비판보다 날카롭다고 느꼈습니다.
Q. 원작 책은 지금도 구할 수 있나요?
A. 한즈 가즈토시의 동명 논픽션은 국내에서 1996년 출간 후 현재 절판 상태입니다. 다만 중고 서점이나 온라인 중고 거래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으면, 하시모토 시노부가 건조한 논픽션 서술을 어떻게 드라마로 옮겼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결론
〈일본의 가장 긴 하루〉는 제가 쉽게 권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소개하게 된 영화입니다. 일본 근현대사에 낯선 분이라면 진입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태평양전쟁을 가해자 시각에서 다룬다는 불편함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태도, 그러니까 쉽게 단죄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비극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려는 그 자세만큼은, 어떤 관점에서든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집에 눈먼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 흐름을 멈추기 위해 얼마만큼의 각오가 필요한지는 1945년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