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2004년 일본 극장에서 46,616,207달러를 벌어들인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영화 제목이 검색창을 오르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영화가 바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예쁜 러브스토리인줄 알았는데, 두 번째 볼 때 미오가 내린 선택의 무게를 비로소 제대로 느꼈습니다.

줄거리와 결말
영화는 사실 결말부터 보여줍니다. 곧 18살이 될 유지가 케이크 가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단순한 프롤로그가 아닙니다. 이 첫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핵심을 조용히 품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엄마 미오를 잃은 타쿠미는 여섯 살 아들 유지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를 앓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여기서 공황장애란 갑작스러운 극심한 공포와 함께 심장이 빨리 뛰거나 호흡 곤란이 오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타쿠미는 사람이 많은 곳이나 빠른 이동수단을 견디지 못합니다. 축제에 함께 갔다가 인파 속에서 쓰러지는 장면은, 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함을 안고 사는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두 사람은 숲에서 기억을 잃은 여자를 발견합니다. 미오였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를 집에 데려온 뒤 타쿠미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짝꿍이었던 시절, 졸업날 미오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 대학 시절 타쿠미가 핑계를 들어 전화를 걸었던 것까지. 솔직히 이 회상 장면들이 제게는 본편보다 더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이자 진심이 담긴 부분이 드러납니다. 돌아온 미오는 사실 과거에서 온 20살의 미오였습니다. 타임 슬립(Time Slip), 즉 시간을 초월한 이동을 통해 9년 뒤의 미래를 다녀온 것입니다. 그녀는 미래에서 타쿠미와 결혼했고 유지를 만났으며, 동시에 자신이 28살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도 알아버렸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해 더 오래 살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타쿠미와 유지를 선택했습니다.
장마가 끝나던 날, 미오는 사라집니다. 타쿠미는 달려가지만 늦지 않게 도착했고, 세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비와 함께 왔다가 비와 함께 떠난 미오. 그런데 이 이별이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 공황장애를 앓는 아버지 타쿠미와 여섯 살 아들 유지의 현재, 그리고 기억을 잃고 돌아온 미오의 이야기
- 타임 슬립을 통해 미래를 다녀온 20살의 미오가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타쿠미를 선택한 결말
- 장마가 끝나는 날 예고된 이별 — 그러나 슬픔보다 사랑의 밀도가 더 진하게 남는 엔딩
- 미오가 남긴 준비들 — 12년치 생일 케이크 예약, 유지에게 집안일 가르쳐두기 — 이별을 미리 살아낸 사람의 흔적
다케우치 유코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다케우치 유코를 빼면 반쪽짜리 이야기가 됩니다. 1980년생인 그녀는 1998년 영화 <링>으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2004년에는 드라마 <프라이드>와 이 영화로 일본 최정상 배우의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 해 제28회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본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습니다. 기억이 없는 미오를 연기할 때와, 모든 것을 알면서 이별을 준비하는 미오를 연기할 때의 온도 차이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우가 같은 얼굴로, 완전히 다른 무게를 담아냈습니다. 나카무라 시도의 타쿠미와 어린 배우 타케이 아카시의 유지도 그 연기를 완벽하게 받아냈고요.
이 작품은 2004년 일본을 휩쓴 순애(純愛) 붐, 즉 순수한 사랑을 그린 콘텐츠의 유행 흐름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같은 해 개봉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함께 이 흐름을 이끌었는데,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오의 선택은 운명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으니까요. 그 능동성이 이 영화를 20년이 지나도 회자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제가 "하나(花)"를 부른 오렌지 레인지의 노래는 2005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고, IMDb 평점 7.8점, 관객 승인율 92%를 기록했습니다(출처: IMDb). 2018년에는 소지섭·손예진 주연으로 한국판 리메이크가 제작되기도 했는데, 원작이 그만큼 인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사실 처음 볼 때는 느리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관람객들이 영화의 페이스를 단점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 느린 속도가 오히려 세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의 밀도를 높여주고, 이별의 무게를 더 사실감 있게 전달합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이 의도한 호흡이라는 걸 두 번째 관람에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배열하고 전달하는 방식 면에서도 이 작품은 특별합니다. 결말을 시작으로 배치하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마지막 20분에 모든 퍼즐을 맞추는 방식은 극적인 반전 없이도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점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출처: 일본 아카데미상 공식 사이트).
자주 묻는 질문
Q. 지금 만나러 갑니다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이 질문, 사실 답하기가 좀 모호합니다. 미오는 장마가 끝나면 사라지고 타쿠미와 유지는 다시 둘만 남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이별이지만, 미오가 자신의 선택으로 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슬픔보다 따뜻함이 더 크게 남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Q. 미오가 미래를 알면서도 타쿠미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안에서 미오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28살에 죽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녀는 타쿠미와 유지를 선택했는데, "짧더라도 그 사람과의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단순한 비극과 구분 짓는 지점입니다.
Q. 한국 리메이크와 원작 중 어떤 걸 먼저 보는 게 좋을까요?
A.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2004년 일본판이 이야기의 온도와 속도를 더 섬세하게 다루고 있고, 다케우치 유코의 연기를 먼저 보고 나면 리메이크를 감상할 때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판도 소지섭·손예진의 케미로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Q. 타쿠미의 공황장애가 영화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A. 단순한 설정이 아닙니다. 타쿠미의 공황장애는 "아내에게 고생만 시켰다"는 죄책감의 원인이 되고, 동시에 미오가 왜 그런 남자를 선택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몸이 불편한 그를 보듬는 것이 미오에게는 부담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게 영화 전체에서 조용히 드러납니다.
결론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는 건 꽤 특별한 일입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저에게 그런 영화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예쁜 순애물로 넘겼는데, 두 번째 볼 때 미오가 12년치 케이크를 예약하고 유지에게 달걀 프라이와 구두 닦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게 곧 다가올 이별의 모습이니까요.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줄거리를 모른 채 일단 보시길 권합니다. 결말을 알고 봐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마지막 20분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은 처음 보는 분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니까요. 비 오는 날 저녁, 뜨거운 음료 한 잔 옆에 두고 보시면 딱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