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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주변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저는 고등학교 때 직접 겪어봤습니다. 그 애가 없으니까 우리 무리의 서열이 바뀌고, 점심 자리가 바뀌고.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정확히 그 감성을 건드립니다. 2013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이 영화,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키리시마의 부재가 만든 균열
영화는 배구부 에이스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뒀다는 소식 하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키리시마가 화면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으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움직이게 하는 장치이지만, 그 자체로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요소를 말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즐겨 쓰던 기법으로, 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오지도 않는 고도처럼 모든 인물의 행동을 촉발하는 역할만 합니다.
저는 처음에 학원물이겠거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군상극(群像劇)이었습니다. 군상극이란 특정 주인공 한 명이 아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교차 서술하는 서사 방식입니다. 배구부, 취주악부, 야구부, 영화부, 퀸카 무리, 히로키 패거리까지. 키리시마의 부재는 이 모든 집단에 균열을 만들고 각자의 민낯을 드러나게 합니다.
흥미로운 건 구성 방식입니다. 영화는 같은 금요일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 다시점 구조 덕분에 어느 한 인물의 편을 들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시각에서는 영화부가 방해꾼이고, 어느 시각에서는 취주악부 아야가 안쓰럽습니다. 저는 이 구조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인물 하나를 단정 짓지 못했고, 그게 오히려 더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 키리시마는 영화 내내 실체 없이 부재로만 존재하는 맥거핀 장치
- 군상극 구조로 배구부·취주악부·영화부 등 여러 인물군을 동시에 조명
- 같은 날을 반복 서술하는 다시점 구성이 단일 주인공의 착각을 방지
- 2013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 원작은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
히로키의 눈물과 마에다의 웃음
영화에서 가장 대조적인 두 인물은 히로키와 마에다입니다. 히로키는 누가 봐도 잘 나가는 쪽입니다. 운동 신경도 좋고 인기도 있습니다. 농구공을 슬쩍 던져 골대에 넣으며 "되는 인간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반면 마에다는 영화부 부장이고, 학교 안에서 은따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에게 촬영을 통제당하고, 배구부 아이들에게 조롱받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 히로키가 마에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웃으며 묻습니다. 나중에 감독이 되실 건가요? 여배우랑 결혼하실 건가요? 아카데미 받으실 건가요? 마에다의 대답은 진지합니다. 영화감독은 무리일 것 같다고. 하지만 그 얼굴은 웃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봤던 건, 히로키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히로키가 사실 이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성공할 수 없는데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가망이 없는데도 연습하는 야구부 선배가 왜 저렇게 많냐고. 히로키는 "되는 인간"인 척해왔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던 겁니다.
반대로 마에다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찍습니다. 영화 이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가깝습니다. 내재적 동기란 외부의 보상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심리를 말합니다. 스탠퍼드대 심리학 연구(출처: Stanford Psychology)에서도 내재적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취감과 지속력을 보인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마에다는 될지 안 될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찍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도 나아가는 것의 의미
이 영화를 두고 "희망적인 청춘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 영화는 희망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키리시마는 끝까지 오지 않고, 문제들은 말끔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배구부는 시합에서 졌고, 야구부 선배는 드래프트를 못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주악부 아야의 짝사랑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건, "그래도 한다"는 것 자체를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과정 지향성(Process Orien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로, 목표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행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실제로 일본 문부과학성의 청소년 심리 조사(출처: 文部科学省)에 따르면, 고등학생 시기의 과정 지향적 태도는 졸업 이후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잘 안 됐어도 계속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마에다가 계속 카메라를 드는 것, 아야가 다시 색소폰을 부는 것, 야구부 선배가 여전히 공을 던지는 것. 이 장면들이 전부 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히로키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무언가를 향해 걷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서 있는 건지도 불분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장면을 히로키의 변화 가능성으로 보기도 하는데, 저는 그보다는 아직 답을 못 찾은 사람에 대한 감독의 연민으로 봤습니다.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청춘물을 넘어 삶 전체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키리시마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히로키의 뒷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깔끔한 해소를 기대하셨다면 조금 당황하실 수 있는데, 저는 그 여운이 오히려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메시지입니다.
Q. 히로키가 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가요?
A. 히로키는 "되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마에다가 안 될 줄 알면서도 영화를 찍는 모습, 야구부 선배가 드래프트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자신만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Q. 원작 소설이랑 영화 중 뭐가 더 나을까요?
A. 원작은 아사이 료의 소설로,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작품입니다. 소설은 인물 내면 서술이 더 깊고, 영화는 시각적 구도와 다시점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본 뒤 소설을 읽는 순서를 권합니다.
Q. 이 영화가 청춘 영화라고 볼 수 있나요?
A. 청춘 영화라는 분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 넓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불투명해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 이야기는 고등학생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싶었던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유독 크게 다가올 겁니다.
결론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제가 본 일본 영화 중 가장 조용하게, 그리고 가장 오래 남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반전도, 감동적인 연설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히로키의 뒷모습이, 카메라를 드는 마에다의 손이, 색소폰을 다시 집어 드는 아야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뭘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 가장 공허할 수 있다는 것.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직접 던지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