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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부재, 히로키, 마에다)

lime22 2026. 9. 1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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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주변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저는 고등학교 때 직접 겪어봤습니다. 그 애가 없으니까 우리 무리의 서열이 바뀌고, 점심 자리가 바뀌고.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정확히 그 감성을 건드립니다. 2013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이 영화,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부재, 히로키, 마에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부재, 히로키, 마에다)

     

    키리시마의 부재가 만든 균열

    영화는 배구부 에이스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뒀다는 소식 하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키리시마가 화면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으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맥거핀이란 이야기를 움직이게 하는 장치이지만, 그 자체로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요소를 말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즐겨 쓰던 기법으로, 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오지도 않는 고도처럼 모든 인물의 행동을 촉발하는 역할만 합니다.

     

    저는 처음에 학원물이겠거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군상극(群像劇)이었습니다. 군상극이란 특정 주인공 한 명이 아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교차 서술하는 서사 방식입니다. 배구부, 취주악부, 야구부, 영화부, 퀸카 무리, 히로키 패거리까지. 키리시마의 부재는 이 모든 집단에 균열을 만들고 각자의 민낯을 드러나게 합니다.

    흥미로운 건 구성 방식입니다. 영화는 같은 금요일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 다시점 구조 덕분에 어느 한 인물의 편을 들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시각에서는 영화부가 방해꾼이고, 어느 시각에서는 취주악부 아야가 안쓰럽습니다. 저는 이 구조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인물 하나를 단정 짓지 못했고, 그게 오히려 더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 키리시마는 영화 내내 실체 없이 부재로만 존재하는 맥거핀 장치
    • 군상극 구조로 배구부·취주악부·영화부 등 여러 인물군을 동시에 조명
    • 같은 날을 반복 서술하는 다시점 구성이 단일 주인공의 착각을 방지
    • 2013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 원작은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
    요약: 키리시마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의 빈자리가 모든 인물을 움직이는 맥거핀이며, 다시점 군상극 구조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히로키의 눈물과 마에다의 웃음

    영화에서 가장 대조적인 두 인물은 히로키와 마에다입니다. 히로키는 누가 봐도 잘 나가는 쪽입니다. 운동 신경도 좋고 인기도 있습니다. 농구공을 슬쩍 던져 골대에 넣으며 "되는 인간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반면 마에다는 영화부 부장이고, 학교 안에서 은따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에게 촬영을 통제당하고, 배구부 아이들에게 조롱받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 히로키가 마에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웃으며 묻습니다. 나중에 감독이 되실 건가요? 여배우랑 결혼하실 건가요? 아카데미 받으실 건가요? 마에다의 대답은 진지합니다. 영화감독은 무리일 것 같다고. 하지만 그 얼굴은 웃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봤던 건, 히로키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히로키가 사실 이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성공할 수 없는데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가망이 없는데도 연습하는 야구부 선배가 왜 저렇게 많냐고. 히로키는 "되는 인간"인 척해왔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던 겁니다.

    반대로 마에다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찍습니다. 영화 이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가깝습니다. 내재적 동기란 외부의 보상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심리를 말합니다. 스탠퍼드대 심리학 연구(출처: Stanford Psychology)에서도 내재적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취감과 지속력을 보인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마에다는 될지 안 될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찍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겁니다.

    요약: 뭘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히로키가 사실 가장 텅 빈 인물이었고, 마에다의 웃음은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내재적 동기를 보여줍니다.

     

    그래도 나아가는 것의 의미

    이 영화를 두고 "희망적인 청춘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 영화는 희망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키리시마는 끝까지 오지 않고, 문제들은 말끔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배구부는 시합에서 졌고, 야구부 선배는 드래프트를 못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주악부 아야의 짝사랑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건, "그래도 한다"는 것 자체를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과정 지향성(Process Orien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로, 목표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행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실제로 일본 문부과학성의 청소년 심리 조사(출처: 文部科学省)에 따르면, 고등학생 시기의 과정 지향적 태도는 졸업 이후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시작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잘 안 됐어도 계속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마에다가 계속 카메라를 드는 것, 아야가 다시 색소폰을 부는 것, 야구부 선배가 여전히 공을 던지는 것. 이 장면들이 전부 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히로키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무언가를 향해 걷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서 있는 건지도 불분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장면을 히로키의 변화 가능성으로 보기도 하는데, 저는 그보다는 아직 답을 못 찾은 사람에 대한 감독의 연민으로 봤습니다.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청춘물을 넘어 삶 전체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이 영화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그래도 한다"는 과정 지향적 태도 자체를 조용히 긍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키리시마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히로키의 뒷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깔끔한 해소를 기대하셨다면 조금 당황하실 수 있는데, 저는 그 여운이 오히려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메시지입니다.

     

    Q. 히로키가 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가요?

    A. 히로키는 "되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마에다가 안 될 줄 알면서도 영화를 찍는 모습, 야구부 선배가 드래프트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자신만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Q. 원작 소설이랑 영화 중 뭐가 더 나을까요?

    A. 원작은 아사이 료의 소설로,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작품입니다. 소설은 인물 내면 서술이 더 깊고, 영화는 시각적 구도와 다시점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본 뒤 소설을 읽는 순서를 권합니다.

     

    Q. 이 영화가 청춘 영화라고 볼 수 있나요?

    A. 청춘 영화라는 분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 넓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불투명해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 이야기는 고등학생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싶었던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유독 크게 다가올 겁니다.

     

    결론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제가 본 일본 영화 중 가장 조용하게, 그리고 가장 오래 남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반전도, 감동적인 연설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히로키의 뒷모습이, 카메라를 드는 마에다의 손이, 색소폰을 다시 집어 드는 아야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뭘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 가장 공허할 수 있다는 것.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직접 던지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