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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천사 영화 (킬러와 에이전트, 고독한 청춘)

lime22 2026. 7. 14. 19:34

목차


    1995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는 원래 <중경삼림>의 세 번째 에피소드로 기획됐다가 러닝타임 문제로 별도 제작된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난해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스토리에 '잠기는' 영화였거든요. 홍콩 반환을 2년 앞두고 만들어진 이 작품은,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 숨겨진 청춘의 고독을 치명적인 영상미로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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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천사 영화 (킬러와 에이전트, 고독한 청춘)

     

    타락천사, 킬러와 에이전트 

    영화의 첫 번째 파트는 킬러 황지민과 그의 동업자 에이전트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직접 대면하지 않습니다. 에이전트는 임무 현장을 사전 답사해 손으로 직접 그린 조감도(鳥瞰圖)—하늘에서 내려다보듯 공간 전체를 파악한 평면 스케치—를 팩스로 보내고, 황지민은 그 정보를 토대로 움직입니다. 정보를 입력하면 결과를 출력하는 일종의 인간 알고리즘이죠.

    제가 이 구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에이전트가 황지민의 빈 집을 청소하는 장면입니다. 클럽에나 어울릴 법한 차림으로 걸레질을 하고, 그의 쓰레기를 챙기고, 침대 위에 누워 그의 냄새를 맡습니다. 이것은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그녀는 관계의 규칙 안에서 허용된 유일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방식이 이렇게까지 처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규칙 자체가 애초에 감정을 금지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황지민 역시 완전히 단절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일부러 흔적을 남깁니다.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흔적을요. 왕가위 감독이 자주 활용하는 미장센(mise-en-scène)—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조명, 소품, 배우의 위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이 이 장면들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광각 렌즈가 만들어내는 왜곡된 공간감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시각화합니다.

    황지민이 동업 관계를 끊겠다고 통보하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직접 말하는 대신, 자신이 자주 가던 술집에 동전 하나를 남기고 "내 행운 번호는 1818"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작별인사죠. 그리고 그는 에이전트의 마지막 의뢰를 수락하다 목숨을 잃습니다. 이번 목표가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갔을까, 몰랐을까—이 부분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에이전트는 단 한 번도 황지민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채 사랑에 빠진다
    • 황지민은 감정을 차단하면서도 흔적을 남기는 이중적 태도를 유지한다
    • 마지막 의뢰의 목표가 황지민 자신이었다는 반전이 두 사람의 관계를 비극으로 완성한다
    • 왕가위 특유의 광각 렌즈 미장센이 인물 간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요약: 킬러와 에이전트의 관계는 감정을 금지한 구조 속에서 피어난 단방향 사랑이며, 왕가위의 미장센은 그 거리를 화면으로 체화시킨다.

     

    고독한 청춘  

    두 번째 파트의 주인공 하지무는 어린 시절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은 후 말을 잃었습니다. 중경삼림의 금성무가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재기하던 장면을 기억하신다면, 이건 분명한 오마주(hommage)입니다. 오마주란 원작에 대한 경의를 담아 의도적으로 유사한 요소를 재현하는 기법인데, 왕가위는 두 영화를 이런 소품 하나로 슬쩍 연결해 놓습니다.

    하지무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친구도 직업도 없고, 영업이 끝난 가게에 몰래 들어가 손님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이것을 보고 "그냥 이상한 캐릭터"라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저는 이 행동들이 실은 관계에 대한 갈망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보였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억지로라도 사람을 붙잡아 두는 방식이죠.

    찰리와의 에피소드는 하지무에게 처음으로 자발적인 감정을 심어줍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녀와 함께 홍콩 밤거리를 헤매는 시간이 하지무에겐 데이트였지만, 찰리에게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하지무는 처음으로 실연의 느낌을 온몸으로 맞닥뜨립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오래 머물러있었던 것은, 이 상실감이 단순한 짝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원했던 무언가'를 잃은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기록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무는 캠코더로 아버지의 일상을 찍습니다. 말을 잃은 아들이 카메라를 통해 말을 거는 방식이랄까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영상들을 다시 보는 장면에서 저는 꽤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 황지민이 하지무의 가게에 손님으로 잠깐 등장하는 장면—두 파트의 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이 연출—은 왕가위식 유니버스 구축 방식(출처: Cinémathèque française 왕가위 회고전 자료)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는 하지무가 에이전트를 만나 오토바이를 타고 홍콩 새벽 거리를 달리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잃은 뒤 우연히 만난 것이죠. 이 결말이 희망인지 또 다른 고독의 시작인지, 개인적으로는 그 판단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넘기고 있다고 봅니다. 왕가위는 답을 주지 않는 감독이니까요.

    한편 이 영화의 촬영은 크리스토퍼 도일이 담당했는데, 그의 핸드헬드(hand-held) 촬영 기법—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들고 찍어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인물들의 심리적 불안과 도시의 혼란을 그대로 체감하게 해줍니다(출처: IMDb 크리스토퍼 도일 필모그래피). 3년 전 왕가위는 이 영화를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비율—쉽게 말해 극장에서 가로로 훨씬 넓게 펼쳐지는 2.35:1 화면비—로 리마스터링했는데, 원본 광각 렌즈 특유의 압도적인 왜곡미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 저는 원본으로 봤습니다.

    요약: 하지무의 서사는 기억·망각·상실을 축으로 전개되며, 왕가위는 답 없는 결말로 고독의 해석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자주 묻는 질문

    Q. 타락천사가 중경삼림이랑 같은 세계관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원래 중경삼림의 세 번째 에피소드로 기획됐다가 러닝타임 문제로 분리된 작품입니다. 청킹맨션이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같은 실제 홍콩 공간이 공유되고, 파인애플 통조림 같은 소품도 두 영화를 연결하는 오마주로 등장합니다. 중경삼림을 먼저 보고 타락천사를 보면 연결 지점들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Q. 타락천사 스토리가 너무 어렵고 불친절하다는 말이 많던데 그냥 봐도 될까요?

    A. 스토리를 논리적으로 따라가려 하면 확실히 불편한 영화입니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즉흥적 현장 연출 방식 때문에 전개가 뜬금없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죠. 그런데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느끼려" 하면 오히려 매우 직관적인 영화입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플롯 파악보다 화면과 음악에 집중하는 것을 권합니다.

     

    Q. 리마스터링 버전이랑 원본 중 어떤 걸 보는 게 나을까요?

    A. 두 버전을 다 보셨다는 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리마스터링 버전이 색감이 더 선명하고 화면 비율이 시네마스코프로 넓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원본의 광각 렌즈가 주는 왜곡된 공간감과 거칠고 어두운 색감이 이 영화의 정서와 더 잘 맞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원본이 좋았습니다.

     

    Q. 타락천사에 나오는 배우들이 궁금한데 누가 출연하나요?

    A. 킬러 황지민 역에 여명, 말 못하는 청년 하지무 역에 금성무가 출연합니다. 에이전트 역은 이가흔, 찰리 역은 양채니, 그리고 막문위도 출연합니다. 1990년대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으로, 당시 앳된 미모의 절정기를 담고 있다는 점도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결론

    타락천사는 로맨스 영화라기보다 고독의 초상화에 가깝습니다. 두 파트의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건 관계를 원하면서도 관계에 실패하는 방식이고, 왕가위는 그것을 설명하는 대신 홍콩의 밤거리 이미지 위에 그냥 올려놓습니다. 관객이 느끼든, 지나치든 감독이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처음엔 "어렵다"는 느낌이 강했고 두 번째엔 "슬프다"는 느낌이 훨씬 컸습니다. 90년대 홍콩의 감성을 온전히 체감하고 싶다면,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 문법에 발을 들이고 싶다면 중경삼림과 함께 타락천사를 묶어서 보시길 권합니다. 순서는 중경삼림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