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영화 텐텐 (오다기리죠, 도쿄산책, 힐링영화)

lime22 2026. 7. 20. 02:56

목차


    빚쟁이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빚쟁이한테 돈을 받으며 같이 산책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 영화는 특유의 엉뚱한 유머와 잔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 지는 영화. 일본 영화 '텐텐(轉轉)'은 정처없이 이리저리 걷는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 텐텐 (오다기리죠, 도쿄산책, 힐링영화)
    영화 텐텐 (오다기리죠, 도쿄산책, 힐링영화)

     

    빚쟁이와 산책, 이상한 설정 

    빚쟁이가 채무자한테 100만 엔을 주면서 같이 걷자고 하는 설정이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니 그 설정이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학교 8학년 후미야(오다기리 죠)는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학자금을 마련하려다 사채에 손을 댔고, 결국 84만 엔이라는 빚더미에 앉아 몸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까지 몰립니다.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빚쟁이 후쿠하라(미우라 토모카즈)인데, 이 사람이 느닷없이 100만 엔을 내밀며 자신과 함께 도쿄를 걷자고 합니다.

    목적지는 카스미가세키. 기간은 후쿠하라가 만족할 때까지. 조건은 그냥 같이 걷는 것. 황당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는 후미야는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후미야였어도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520엔밖에 없는 주머니로 파칭코까지 기웃거린 사람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뭐가 있겠어요.

    영화 제목 '텐텐(轉轉)'은 일본어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정처 없이 떠도는 모습을 뜻하는데,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이 두 글자가 정확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목적지보다 걷는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요약: 빚과 산책이라는 엉뚱한 설정이 영화의 핵심 서사를 단단하게 떠받치고 있으며, '텐텐'이라는 제목 자체가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오다기리 죠와 미우라 토모카즈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 다들 아실 겁니다. 잘생겼는데 자기 외모를 전혀 꾸미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죠. 다른 영화에서도 정돈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미야는 지저분하고 무기력하고 뭔가를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파칭코에서 돈을 날리고, 길에서 기타리스트를 따라다니다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울컥합니다. 그 꾸밈없는 연기가 이 캐릭터를 살렸습니다.

    미우라 토모카즈가 연기한 후쿠하라는 또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코믹하고 엉뚱하면서도 어느 순간 진지해지는, 말하자면 언밸런스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배우 본인이 코믹함과 진지함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연기파라 이 역할이 잘 맞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우라 토모카즈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처음 도쿄를 걷기 시작할 때는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거리감이 그대로 느껴지죠. 그런데 걷다 보면 후쿠하라가 이미 사채업 일을 그만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두 사람은 빚으로 얽힌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영화는 사실 흔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의 조합은 이미 미키 사토시 감독의 전작 '인 더 풀'에서 한 번 호흡을 맞춘 바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 사이의 신뢰가 화면에서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미키 사토시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출처: IMDb 미키 사토시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오다기리 죠의 꾸밈없는 연기와 미우라 토모카즈의 언밸런스한 매력이 맞물리며, 텐텐의 두 남자는 스크린에서 설득력 있는 케미를 만들어냅니다.

     

    도쿄 산책: 닭꼬치, 오교치, 카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장면이 아니라 음식입니다. 닭꼬치, 오교치, 카레. 이 세 가지가 영화의 감정선을 대신 전달합니다.

    오교치(柳橙汁)는 레몬맛 젤리 형태의 푸딩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후쿠하라가 아내와 다투고 나서 혼자 먹었던 음식으로 나오는데, 보는 내내 '저게 대체 무슨 맛이지' 싶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대만 디저트라고 하더군요. 일본 음식인 줄 알았는데 의외였습니다. 직접 먹어본 분들에 따르면 새콤달콤한 젤리 식감이라고 하는데, 그게 또 왜인지 후쿠하라의 복잡한 감정과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카레. 마지막 밤에 세 사람이 함께 먹는 카레는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입니다.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처럼 앉아서 밥을 먹는 장면인데, 후미야는 그 평범한 식사 자리에서 7~8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영화 속 음식들이 갖는 서사 기능(Narrative Function), 즉 음식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관계 변화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하는 방식은 미키 사토시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입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음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 닭꼬치 — 여행 첫날 어색한 두 사람이 함께 먹으며 거리를 좁히는 매개
    • 오교치 — 후쿠하라가 아내와의 추억을 품고 다니는 물건 같은 음식
    • 카레 — 마지막 밤, 가짜 가족이 진짜 온기를 나누는 식탁의 중심
    요약: 텐텐 속 세 가지 음식은 각각 관계의 시작, 기억, 이별을 상징하며 대사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핵심 서사 장치로 기능합니다.

     

    힐링 영화: 가짜가 진짜보다 따뜻할 때 

    영화 중반부부터 두 사람은 마키코라는 여성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후쿠하라의 지인인 마키코는 갑자기 찾아온 조카를 위해 세 사람이 얼떨결에 가짜 가족을 연기하게 됩니다. 후미야는 아들 역할, 후쿠하라는 아버지 역할, 마키코는 어머니 역할.

    그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후쿠하라가 후미야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다, 그냥 아빠라고 불러"라고 말하는 장면. 후미야가 음식이 맛없는 척 주방으로 달려가 혼자 덤덤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 말로 꺼내기 어려운 것들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무척 좋았습니다.

    후미야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후 누군가를 가족이라 부른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짜 가족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식탁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형식이 아니라 온기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이입(Empathy), 즉 관객이 인물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경험이 이 영화에서는 무척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여기서 감정이입이란 단순히 '슬프다'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결핍과 바람이 인물 위에 겹쳐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후미야가 된 것처럼 그 밥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울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저도 울었습니다.

    영화의 원작은 나오키상(直木賞) 수상 작가 후지타 요시나가의 동명 소설입니다. 나오키상이란 일본 대중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수상작을 선정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도 꼭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나오키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출처: 문예춘추 나오키상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 가짜 가족을 연기하며 진짜 온기를 경험하는 후미야의 이야기를 통해, 텐텐은 형식보다 감정이 가족을 만든다는 주제를 조용하고 깊게 전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텐텐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현재 국내 주요 OTT(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등)에서 공식 스트리밍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었으나, 서비스가 종료된 상태입니다. 네이버 시리즈온이나 Google Play 무비 등에서 단품 구매 또는 대여가 가능한지 개별 검색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Q. 오교치가 정확히 어떤 음식인가요?

    A. 오교치(柳橙汁)는 레몬 또는 오렌지 향이 나는 젤리형 푸딩입니다. 일본 디저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만 디저트라고 합니다. 새콤달콤한 젤리 식감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해 하는 분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Q. 텐텐이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던데, 소설도 읽어볼 만한가요?

    A. 원작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 후지타 요시나가의 동명 소설입니다. 영화를 먼저 본 뒤 소설을 읽으면 영화에서 담지 못한 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Q. 미키 사토시 감독의 다른 영화도 비슷한 분위기인가요?

    A. 미키 사토시 감독은 잔잔하고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주로 만드는 감독입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시효경찰' 시리즈가 대표작인데, 텐텐과 비슷한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들도 충분히 좋을 것 같습니다.

     

    결론

    텐텐은 특별한 사건이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걷고, 먹고, 말하고, 헤어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바쁘게만 느껴지는 분들, 혹은 삶이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행복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온다는 후미야의 대사처럼, 이 영화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듭니다. 소소하고 잔잔한 힐링이 필요할 때, 텐텐을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