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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 반복과 균열, 흔들림)

lime22 2026. 7. 25. 10:06

목차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보기시작했습니다.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가 소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히라야마의 마지막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 오늘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라는 것을.

     

    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 반복과 균열, 흔들림)
    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 반복과 균열, 흔들림)

     

    코모레비   

    코모레비(木漏れ日)란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찰나를 포착하는 단어인데, 히라야마가 점심마다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게 오래 남은 것도 이 코모레비였습니다. 그가 찍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흔들리는 순간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확행을 찾는 영화"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 설명은 절반밖에 맞지 않습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겉으로는 반복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일 조금씩 어긋납니다. 취객이 청소 중 팻말을 발로 차고 가고, 동료는 지각하고, 조카가 불쑥 나타납니다. 그가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리듬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오프닝은 세 가지 소리를 이어 붙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할머니가 빗자루로 쓸어내는 소리, 그리고 히라야마의 숨소리. 이 세 소리가 비슷한 결을 공유한다는 걸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서 이 오프닝이 이미 영화 전체를 압축해 두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무, 청소, 사람의 숨결. 영화는 이 세 가지와 끝까지 함께 갑니다.

    히라야마는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런데 조카 니코의 뒷모습을 찍을 때만 처음으로 뷰파인더에 눈을 댑니다. 그 장면이 짧지만 꽤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카메라 안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온 순간이었으니까요. 코모레비를 찍던 시선이, 사람에게로 옮겨오는 순간.

    •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 영화에서 히라야마의 내면 상태를 상징하는 핵심 모티프
    • 히라야마는 흑백 필름을 사용하며, 꿈속 장면 역시 흑백으로 처리됨 — 기억과 사진이 같은 질감을 공유
    • 오프닝의 세 소리(나뭇잎·빗자루·숨소리)는 영화의 세 핵심 요소를 시각보다 청각으로 먼저 제시
    • 빔 벤더스 감독은 이 작품에서 도쿄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재건축 프로젝트 '더 도쿄 토일렛'을 배경으로 사용
    요약: 히라야마의 하루가 빛나는 순간은 평온한 반복이 아니라, 일상에서 비껴나 흔들리는 그 찰나다.

     

    반복과 균열  

    히라야마의 루틴은 촘촘합니다. 이부자리를 개고, 면도를 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캔커피를 뽑아 차에 탑니다. 시계를 챙기지 않고 나서는데,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의 하루는 시간을 대신할 만큼 반복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처음 든 생각은 "이 사람 대단하다"였는데, 좀 더 보고 나서는 "이 사람 이 루틴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구나"로 바뀌었습니다.

    루틴이 무너지는 방식이 영화에서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동료 타카시가 히라야마의 차를 빌리고, 카세트테이프 선택권을 아야에게 넘겨주게 되면서 히라야마는 처음으로 뒷좌석에 쭈그려 앉습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뚱해지는데, 저는 그 표정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좀 아팠습니다. 자기 차에서 자기 음악을 고르지 못하는 상황이, 그에게 꽤 큰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름이 떨어집니다. 늘 정해진 경로를 달리던 사람이 평소와 다른 길을 갔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아끼던 카세트테이프 일부를 팔아 주유를 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야 테이프가 단순한 취미 이상의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테이프는 매일 아침을 시작하게 해주는 장치이자, 오래전 자기 삶의 일부를 보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건 몇 개를 파는 게 아니라, 하루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이었던 거죠.

    여동생 케이코가 찾아오는 장면에서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아주 조금 열어 보입니다. 케이코는 고급차를 타고 오고, 그 모습만으로도 히라야마가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 짐작이 됩니다. 케이코가 "정말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사느냐"라고 묻고 히라야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그 질문에는 직업에 대한 놀람과, 오랜 시간 멀어져 있던 남매 사이의 거리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케이코가 떠난 뒤 히라야마가 주차장에 홀로 서서 눈물을 훔치는데, 이 눈물 하나가 앞선 모든 하루를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요약: 히라야마의 루틴은 취향이 아니라 과거와 거리를 두기 위한 방어 방식에 가깝다. 균열이 생기는 순간 비로소 그 이유가 드러난다.

     

    흔들림  

    영화 후반, 히라야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니코는 엄마에게 돌아가고, 타카시는 일을 그만두고,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던 걸인도 없어집니다. 처음으로 히라야마가 불안해 보이는 순간입니다. 결국 그는 전화 통화 중에 화를 내는데, 이 장면이 짧지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걸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술집 여주인과 그 전남편 토모야마의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가장 오래 여운이 남은 부분입니다. 히라야마는 우연히 마마와 토모야마가 껴안는 장면을 보고 자리를 뜹니다. 그러고는 오래 피지 않던 담배를 삽니다. 이 행동 하나에서 저는 그가 마마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아챘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식. 이 영화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딱 그렇습니다.

    토모야마는 암 전이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시한부란 치료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더 중요한 상황에 놓인 환자를 말합니다. 그가 히라야마에게 묻습니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겹치면 더 어두워지냐고. 히라야마는 직접 해보자며 그를 다리 아래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겹칩니다. 토모야마가 별로 안 어두워지는 것 같다고 말하자, 히라야마는 강경하게 답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 대사가 토모야마에게 한 말인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인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둘 다라는 것입니다. 히라야마는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화장실을 청소하고, 어긋날 걸 알면서도 루틴을 지킵니다. 그것이 그가 변화를 믿는 방식입니다. 반복이 쌓이면 무언가는 달라질 것이라는 신념. 빔 벤더스 감독이 1987년 작품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도 사용했던 "강을 따라가면 바다가 나온다"는 대사를 이 영화에서 다시 꺼낸 것도 그 때문으로 보입니다(출처: Wim Wenders 공식 사이트).

    마지막 장면에서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릅니다. 히라야마는 출근길 차 안에서 웃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웃습니다. 두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 얼굴에 동시에 올라옵니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대사 없이 이 감정의 깊이를 전부 보여줍니다.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납득이 가고도 남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저는 이 마지막 얼굴을 환희로 읽지 않았습니다. 고해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얼굴.

    요약: 히라야마가 매일 출근하는 건 행복해서가 아니라, 흔들리고 나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퍼펙트 데이즈는 실제로 재미있는 영화인가요? 너무 심심하지 않나요?

    A. 일반적으로 "잔잔한 영화"라고 소개되는데, 제 경험상 그 표현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빠른 전개나 극적 반전은 없습니다. 다만 히라야마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조용히 쌓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 오히려 여운이 더 길게 남는 유형입니다.

     

    Q. 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가 무슨 뜻인가요?

    A. 코모레비(木漏れ日)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이 영화에서는 히라야마의 내면 상태를 상징하는 핵심 모티프로 반복 사용됩니다. 그가 매일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도 바로 이 장면입니다.

     

    Q. 히라야마는 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나요?

    A.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동생 케이코가 찾아오는 장면과 아버지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영화는 그 이유보다 지금의 히라야마가 어떻게 하루를 지켜내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방식입니다.

     

    Q.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가 뭔가요?

    A. 도쿄 올림픽에 맞춰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17곳을 著名 건축가들이 재설계한 프로젝트입니다. 안도 타다오를 포함한 여러 건축가가 참여했으며, 이 화장실들을 홍보하기 위해 빔 벤더스 감독에게 영화 제작이 의뢰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홍보 영상인데 칸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경우입니다.

     

    Q. 퍼펙트 데이즈와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주세요.

    A.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이 가장 잘 이어집니다. 버스를 운전하며 시를 쓰는 남자의 일주일을 따라가는 영화인데,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자기 세계를 지키는 방식이 퍼펙트 데이즈와 결이 비슷합니다. 일상의 리듬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결론

    퍼펙트 데이즈를 행복한 삶에 대한 영화로 알았던 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히라야마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슬픔을 안고도 오늘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영화 제목 '퍼펙트 데이즈'가 완벽하게 행복한 날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망치지 않은 하루, 끝까지 잘 보낸 하루에 더 가깝습니다. 히라야마의 마지막 얼굴이 오래 남는 건 그가 깔끔하게 감정 정리가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얼굴로 그는 오늘을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좋으셨다면 일본 작가 코다 아야가 쓴 수필집 '나무'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다 읽고 나면 주변의 나무를, 그리고 자기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