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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장 불이 켜지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야 느끼는 그 불쾌한 찝찝함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귀신도 살인마도 없습니다. 있는 건 딱 하나, 너무나 그럴듯한 현실뿐이었습니다.

근미래 배경이 만들어낸 현재의 공포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아, 이건 SF가 아니구나"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배경은 분명 근미래 도쿄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진이 발생하고, 점멸등이 일렁이는 불안정한 도시. 그런데 이 세계가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그대로 곪은 채 시간만 흐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학교에 AI 감시 체제가 도입되는 장면이 그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판옵티콘이란 18세기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감시 시스템으로, 감시받는 자가 언제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어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영화 속 벌점 CCTV 시스템은 정확히 이 원리로 작동합니다. 학생들의 행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공개되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시선 앞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보면서 느낀 건, 이 감시 시스템의 도입 명분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스포츠카를 세워버린 장난 하나가 빌미가 됩니다. 즉 권력이 감시를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일탈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구조는 출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꾸준히 지적해 온 감시 기술 남용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채도 낮은 회색빛 학교 공간 안에서 교장의 스포츠카만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설정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권력의 상징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과시되는지를 색채만으로 보여줬습니다. 연출이 말하지 않아도 화면이 먼저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 근미래 설정은 SF적 상상이 아닌 현재 문제의 연장선으로 기능
- 판옵티콘 구조의 감시 시스템이 학교를 통해 사회 축소판으로 작동
- 권력 남용의 빌미는 언제나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함을 암시
정체성 갈등이 드러낸 불평등 구조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사실 시위도 자백도 아니었습니다. 코우와 톰이 나누는 짧은 대화였습니다. "만약 유타를 대학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코우도, 톰도, 그리고 저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재일한국인인 코우는 일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서 재일한국인이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 또는 한국계 사람들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차별과 제도적 불이익을 겪어온 집단을 의미합니다. 코우에게는 같은 사건이라도 감당해야 하는 대가가 다릅니다. 대학 장학금이 걸려 있고, 엄마의 기대와 불안정한 체류 여건이 얽혀 있습니다. 반면 유복한 일본인 유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격차는 당사자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알아채기 매우 어렵습니다. 유타가 코우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무관심 때문이 아닙니다. 구조적 불평등(Structural Inequality)을 자신의 삶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적 불평등이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 시스템 자체가 특정 집단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코우의 분노가 유타에게는 그저 예민함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자위대가 학교에 들어와 수업을 진행하고,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에서는 목이 메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반이 넘는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장면이 말하는 건,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출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소수자 보호는 선언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성장 서사가 말하는 것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지진은 처음엔 배경 연출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이게 단순한 분위기 장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땅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코우와 유타의 관계, 그리고 이 사회 자체의 불안정성을 동시에 가리키는 메타포(Metaphor)입니다. 메타포란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 기법으로, 이 영화는 지진을 통해 모든 것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를 시종일관 화면에 심어둡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다고 느낀 것은 유타의 자백 장면입니다. 처음 장난을 제안한 건 유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모른 척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철부지로 그려지던 유타가 강당 단상에 올라서는 순간, 그 행동은 용감한 희생이라기보다 처음으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를 생각했습니다.
코우에게 비겁함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유타에게 뒤늦은 각성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비겁한 사람도 없고, 일방적인 희생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갑니다.
마지막 육교 장면에서 노란 점자블록 선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두 사람. 유타가 그 선을 넘어 코우에게 장난을 치며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단절의 확인이 아니라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로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유타는 선 밖으로 발을 내밀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운드트랙 오브 유스, 어떤 장르 영화인가요?
A. 공식 장르는 청춘 드라마지만, 저는 보는 내내 사회 고발 영화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AI 감시, 이민자 차별, 학생 인권 억압이라는 현실 문제를 근미래 배경 위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가벼운 청춘 감성을 기대하고 보면 꽤 묵직한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Q. 코우가 자수하지 않은 건 비겁한 거 아닌가요?
A.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일한국인인 코우에게는 같은 행동이라도 감당해야 하는 결과의 무게가 유타와 다릅니다. 대학 장학금, 체류 여건, 가족의 기대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앞에 나서지 못하는 건 비겁함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영화도 이 지점을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Q. 영화 마지막 육교 장면이 무슨 의미인가요?
A. 노란 점자블록 선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단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유타가 그 선을 넘어 코우에게 장난을 치는 마지막 동작이 핵심입니다. 완전한 화해인지 일시적인 몸짓인지는 열어두고 있지만,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 영화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 속 AI 감시 시스템이 실제로도 가능한 기술인가요?
A. 가능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국의 사회신용 시스템이나 각국 학교에 도입되고 있는 안면인식 기술 사례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영화가 그리는 벌점 공개 CCTV 시스템은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결론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건 칭찬입니다. 좋은 영화가 반드시 기분 좋게 끝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 영화는 근미래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민자 차별, 감시 권력, 제도적 불평등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코우와 유타의 이야기에서 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정답을 아는 것도, 용감한 것도 아닙니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며 그에 맞는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입니다. 영화가 불편했던 만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