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 없이 봤다가, 어느 장면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주연의 영화 는 화려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보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파리라는 도시와 구두라는 소품이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을 조용히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지, 보고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적어봤습니다. 새 구두를 사야 해, 파리 로케이션 처음엔 그냥 배경이 예쁜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파리 배경 영화라 하니 에펠탑 야경에 몽마르트르 언덕.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관광 명소를 찍는 것이 아니라 아오이가 실제로 살고 있는 파리, 그러니까 지하층 작업실이 있는 오래된 아파트와 단골 카페, 센 강 주변의 오후 햇살을 찍고 있었습니다.이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을 파리 현지에서 직접 촬영한 ..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잔잔한 힐링 영화 한 편 보고 자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저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크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슴 한쪽이 꽉 차 있는 느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는 그런 영화입니다. 배다른 자매 넷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지 그 이유를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족의 정의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카마쿠라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과 네 배우의 앙상블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인데, 고레에다 감독은 이것을 절대 직접 말하..
한때 저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불면증에 두통, 그리고 뭘 먹어도 맛이 없던 그 감각. 당시엔 그냥 번아웃이라고 치부했지만,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개봉된 이 일본 영화는 우울증을 앓는 남편 츠레와 그 곁을 지키는 만화가 아내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고 나면 이상하게 숨통이 트입니다. 우울증,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갑자기 드러눕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거나, 아주 극적인 증상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주요 우울장애란 2주 이상 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료타가 카메라 메모리를 열어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 왜 그런지 한참 후에야 정리가 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는 핏줄과 시간 사이에서 "진짜 아버지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결말의 카메라 사진 한 컷이 그 질문에 가장 잔인하고 정확하게 답하고있습니다. 엘리트 아버지 료타, 그리고 6년의 균열처음에는 료타가 그냥 나쁜 아버지 캐릭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방식이 문제였던 것입니다.대형 건설사 엘리트 사원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아내 미도리, 아들 케이타와 함께 삽니다. 흠잡을 곳 없는 아파트,..
오랫동안 이 영화를 설원에서 오겐키데스카 를 외치는 영화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러브레터를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서야 이것이 단순한 첫사랑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잊은 줄 알았던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오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러브레터 줄거리: 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부친다는 것영화는 한 여자가 눈밭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와타나베 히로코입니다. 그녀는 산악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3주기 추모식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 상실은 여전히 그녀의 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추모식 이후 히로코는 약혼자의 졸업앨범을 펼치다 낡..
2003년 개봉한 이누도 이신 감독의 은 일본 로맨스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걸작으로, 개봉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별 영화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이 10년 전쯤인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이렇게 아프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유모차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조제라는 인물을 처음 마주쳤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 안에 성인 여성이 누워 있고, 접근하는 낯선 이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첫인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보다 보면 그 유모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조제에게 유모차는 일종의 안전 캡슐..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에 자꾸 화면을 되돌렸습니다. 악당이 잡히지 않고, 주인공은 화면 밖에서 조용히 죽고, 마지막 장면은 노인의 꿈 이야기로 끝납니다. 2007년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 어떤 친절도 없이 관객에게 세상의 불합리함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권선징악도, 통쾌한 복수도 없는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는지, 보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안톤 시거라는 존재, 인간인가 재앙인가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은, 과연 안톤 시거를 '악당'이라고 불러도 되는가입니다. 처음에는 그를 그냥 잔인한 킬러로 봤는데, 볼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시거는 캐틀 건(cattle ..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멋진 액션과 마틸다의 당돌한 눈빛에 그냥 빠졌는데, 최근에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뤽 베송 감독의 1994년작 은 단순한 범죄 액션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연출의 힘, 두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서사 구조, 그리고 이 영화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를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1994년 뤽 베송, 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30년 전 영화를 다시 보면서 촌스러운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차가운 뉴욕 골목을 롱숏으로 천천히 훑으며 시작되는 그 첫 장면은 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연인』은 1984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이 1992년에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식민지 베트남이라는 이국적이고 쓸쓸한 풍경 속에서, 가난한 프랑스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남자의 만남. 지독한 열병과 같았던 그리움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가슴 시리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시대적 결핍이 만들어낸 구조영화는 식민지(Colonial Society) 체제 아래 놓인 1920년대 후반 베트남 사이공을 배경으로 합니다. 식민지 체제란 지배국이 피지배 지역의 경제·문화·정치를 장악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영화 속 소녀(제인 마치)의 삶은 그 체제 안에서 이중으로 소외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인이지만..
1990년 개봉 당시 홍콩 박스오피스를 휩쓴 《천장지구》는 지금도 홍콩 영화 황금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게 30년 전 영화라고?" 싶었습니다. 유덕화의 눈빛 하나가 대사 열 줄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천장지구, 홍콩 누아르 혹시 '홍콩 누아르(Hong Kong Noir)'라는 장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홍콩 누아르란, 1980~90년대 홍콩 영화 특유의 범죄·액션·멜로가 뒤섞인 장르 문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총성과 눈물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영화들이죠. 《천장지구》는 그 장르의 정점에 있는 작품입니다.연출을 맡은 진목승 감독은 당시 신예였지만, 이 작품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제작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