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한 번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라고 말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비정전〉을 처음 봤을 때 오히려 그 반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비가 수리진에게 건네는 1분의 약속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상실을 미리 박제해두는 일종의 자기방어였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1990년 작 〈아비정전〉은 뿌리 없는 한 청년이 사랑도 정체성도 잃어가는 과정을 초록빛 습기 속에 가두어 둔 영화입니다. 발 없는 새 — 처음부터 예고된 결말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결말을 슬며시 내보입니다. 안개 낀 열대 밀림이 느린 카메라에 실려 흐르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로 제목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 밀림이 아비가 죽기 직전 기차 차창 밖으로 바라본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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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12.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