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굳이 돌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이 설정을 알았을 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오히려 그 규칙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본영화 〈커피가 식기 전에〉, 조용한 주말 오후에 혼자 봤는데 결말 즈음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굴곡 없는 영화를 좋아하는 저한테는 꽤 오랜만에 제대로 마음에 박힌 작품이었습니다. 타임슬립 설정 이 영화는 타임슬립(time slip), 즉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합니다. 여기서 타임슬립이란 특정 인물이 현재 시점을 벗어나 과거 혹은 미래의 시간대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판타지 장치를 의미합니다. 수많은 타임슬립 영화가 있지만 〈커피가 식기 전에〉가 독특한 이유는 그 조건이 유독 까다롭다는 점입니다.이 카페..
낯선 사람과 하루를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는 게 낭만일까요, 아니면 그냥 시간 낭비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꽤 오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영화 "흐르는대로"는 어떤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그냥 두 사람이 걷고 말하고 또 걷는 하루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이상하게 뭔가 남더라고요. 끌림 영화는 버스 안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사토미(카라타 에리카)가 옆자리 낯선 남자 토모노리(엔도 유야)의 책을 슬쩍 훔쳐보는 장면인데요. 제가 본 첫인상은 "아 맞아, 저 상황 나도 해봤다"였습니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종이책 읽는 사람 보면 괜히 눈이 가잖아요. 딱 그 감각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토모노리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책갈피를 떨어뜨리고, 사토미는 그걸 줍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원작의 감동을 망칠까봐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명작 '초속 5센티미터'가 원작 팬이라면 영화도 분명 좋아하실 것입니다. 둘 다 보면서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원작 팬이 놓치기 쉬운 구조 변화원작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옴니버스 구성이었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omnibus)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독립된 에피소드들이 나란히 놓이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원작은 세 편의 단편이 각각 다른 계절과 장소를 무대로 타카키의 시간을 조각조각 보여줍니다. 그 단절감 자체가 작품의 핵심 정서였죠.실사 영화는 이 구조를 완전히 해체했습니다. 대신 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