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불면증에 두통, 그리고 뭘 먹어도 맛이 없던 그 감각. 당시엔 그냥 번아웃이라고 치부했지만,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개봉된 이 일본 영화는 우울증을 앓는 남편 츠레와 그 곁을 지키는 만화가 아내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고 나면 이상하게 숨통이 트입니다. 우울증,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갑자기 드러눕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거나, 아주 극적인 증상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주요 우울장애란 2주 이상 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료타가 카메라 메모리를 열어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 왜 그런지 한참 후에야 정리가 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는 핏줄과 시간 사이에서 "진짜 아버지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결말의 카메라 사진 한 컷이 그 질문에 가장 잔인하고 정확하게 답하고있습니다. 엘리트 아버지 료타, 그리고 6년의 균열처음에는 료타가 그냥 나쁜 아버지 캐릭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방식이 문제였던 것입니다.대형 건설사 엘리트 사원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아내 미도리, 아들 케이타와 함께 삽니다. 흠잡을 곳 없는 아파트,..
2003년 개봉한 이누도 이신 감독의 은 일본 로맨스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걸작으로, 개봉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별 영화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이 10년 전쯤인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이렇게 아프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유모차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조제라는 인물을 처음 마주쳤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 안에 성인 여성이 누워 있고, 접근하는 낯선 이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첫인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보다 보면 그 유모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조제에게 유모차는 일종의 안전 캡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