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봤는데, 정작 제가 울컥했던 건 연애 장면이 아니었거든요.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그 꿈을 찾는 순간, 그게 어찌나 낯설고 또 익숙하던지. 이 영화는 로맨스 포장지 안에 담긴 청춘 드라마였습니다. 줄거리와 주제 처음 이 영화를 고른 건 솔직히 고마츠 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시선을 붙잡은 건 오오이즈미 요가 연기한 콘도 마사미였습니다. 서툴고 소심한데 어딘가 단단한 인물. 그 조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육상부의 에이스였던 고등학생 타치바나 아키라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달리기를 관두고, 그 공백을 채우듯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만난 점장 콘도 마..
조용한 영화 한 편이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딱 그랬습니다. 처음엔 도라야키를 만드는 따뜻한 음식 영화인 줄 알았는데, 다 보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조용히 던져주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쿠에 할머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저도 모르게 '저분은 좀 이상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손가락이 심하게 뒤틀린 채 일흔여섯의 나이로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거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판단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영화는 도쿠에의 과거를 통해 한센병(Hansen's disease) ..
솔직히 저는 이 영화 초반부는 너무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서 단조로웠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보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는 장남의 기일에 모인 하루동안의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그 속에 아주 날카로운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가족애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가족,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아버지 쿄헤이는 의사로서의 삶에 모든 자부심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장남 준페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차남 료타에게 의업을 이어 달라는 기대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말을 아끼지만, 료타가 미술품 복원 일을 한다고 하면 식탁에 미묘한 침묵이 깔립니다. 저도 겪어봤는데, 그 침묵이 백 마디 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따뜻한 가족 드라마 정도로 짐작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신파로 흘러갈 법한 모든 순간을 후타바(미야자와 리에)의 단단함으로 부여잡습니다. 불치병, 왕따, 외도, 배 다른 형제까지 막장 요소가 총집합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배경과 맥락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목욕탕이라는 공간이었습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가족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기능하는데, 남편 카즈히로(오다기리 조)가 사라진 뒤 굴뚝에서 연기가 끊기는 장면이 그걸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카즈히로가 혼자 집을 나..
솔직히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같은 서늘하고 치밀한 미스터리만 쓰는 작가라고 단정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같은 작가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정말 미스터리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구성이 정교했고, 다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못했습니다. 시간여행, 인연의 방정식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시간 구조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도둑 세 명이 숨어든 폐가에서 32년 전 편지가 날아온다는 설정이 처음엔 그냥 판타지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쌓이면서 이게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촘촘하게 짜..
첫 만남이 동시에 마지막 만남이라면, 그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영화 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0분이 지나고 나서야, 에미가 처음부터 내내 울고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원제 . 제목 자체가 이미 답을 품고 있었는데 저는 끝날 때까지 몰랐습니다. 시간 역행 설정, 서사 구조 영화에는 타임 루프(time loop)나 과거 회귀처럼 주인공이 능동적으로 시간을 조작하는 장치가 없습니다. 타임 루프란 특정 시점이 반복되는 구조를 말하는데, 이 작품은 그 반대입니다. 두 사람의 시간 자체가 애초에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그 흐름을 바꿀 방법은 없습니다. 미술대학에 다니는 스무 살 미나미야마 타카토시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고, 후쿠쥬 ..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왜 그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말해주는 영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엔딩 장면에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당연한 결말이라고 해야할지. 완벽한 논리로 쌓아올린 사랑이 결국 그 논리 때문에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나니, 한참동안 말문이 막혔습니다. 와이더닛, 알리바이 트릭보통 추리물은 "누가 죽였나"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실에 도달합니다. 범인을 특정하는 순간 카타르시스가 온다는 게 장르의 오래된 공식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고 시작합니다. 관객은 야스코 모녀가 우발적으로 전남편 도가시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여기서 와이더닛(Whydunit)이라는 개념이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실제로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네 남매가 엄마 없이 버텨낸 사계절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비명도, 과장된 슬픔도 없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방치가 시작되는 방식 영화를 볼 때 제가 가장 당황했던 건 도입부의 분위기였습니다. 이사 온 첫날, 엄마 케이코는 밝고 젊어 보이고, 아이들은 캐리어 속에서 낄낄거리며 나옵니다. 무거운 음악도, 불길한 조짐도 없습니다. 그냥 좀 특이한 가족처럼 보일 뿐이죠.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습니다.집주인에게는 장남 아키라만 알린 채 나머지 세 남매는 숨겨 들어온 이 가족에게는 규칙이 ..
2004년 일본 극장에서 46,616,207달러를 벌어들인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영화 제목이 검색창을 오르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영화가 바로 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예쁜 러브스토리인줄 알았는데, 두 번째 볼 때 미오가 내린 선택의 무게를 비로소 제대로 느꼈습니다. 줄거리와 결말 영화는 사실 결말부터 보여줍니다. 곧 18살이 될 유지가 케이크 가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단순한 프롤로그가 아닙니다. 이 첫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핵심을 조용히 품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엄마 미오를 잃은 타쿠미는 여섯 살 아들 유지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를 앓..
2008년 개봉한 일본 영화, 청춘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 솔직히 처음엔 그냥 맘에 드는 배우, 아오이 유우가 나와서 보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낭만적인 자아 찾기 여행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상처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게 강함인지, 아니면 그냥 도망인지. 이 영화는 그 경계를 조용히 알려줍니다. 전과자가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이 전과자가 되는 장면은 극적인 선택이나 큰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예상 밖이었던 건, 스즈코의 전과가 사실상 그녀 다운 선택에서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전문대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