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주하면 삶이 단순해지고 행복해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영화 는 낚시를 위해 도쿄를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저는 보는 내내 "이게 로맨스 영화인지, 일본 사회 다큐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키야(空き家), 즉 '빈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고 나면 한국 얘기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아키야(빈집문제): 영화가 건드린 진짜 사회 문제아키야(空き家)란 말 그대로 일본어로 '빈 집'을 뜻합니다. 여기서 아키야 문제란 단순히 집이 비어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령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결합하면서 지방과 교외의 주택이 대규모로 방치되는 구조적 사회 현상을 가리킵니다.일본 전체 주택 중 아키야 비율은 현재 13%에 달합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스토리보다 화면에 가득 찬 음식에만 눈이 갔습니다. 영하 54도 남극 기지에서 튀김이라니, 라멘이라니.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음식 너머로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극한의 고립감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는지, 그리고 한 그릇의 밥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2009년작 를 보고 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립감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영화의 배경은 1997년 일본 남극 돔 후지 기지입니다. 해발 3,810m, 평균 기온 영하 54도. 연안의 쇼와 기지에서 약 1,000km 떨어진 내륙 오지입니다. 펭귄도, 바다표범도, 심지어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이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제가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직 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잔잔한 일본 영화'라는 소개만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힐링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첫 장면에서 치히로가 혼자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달랐습니다. 2023년 개봉작 《치히로 상》은 2시간 11분짜리 영화인데,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줄거리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는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합니다. 과거에 성 노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금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영화는 치히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스쳐가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
유난히 끈적한 여름 저녁,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마음이 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를 떠올립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화려한 반전도, 눈물 쏟게 하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위로였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그게 반성이었습니다. 코모리로 도망친 이치코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영화는 그 이유를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이 "자연이 곧 주연 배우"라고 했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이치코의 과거는 그냥 화면 밖에 놓여 있습니다. 직접 보니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한..
조용한 영화 한 편이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딱 그랬습니다. 처음엔 도라야키를 만드는 따뜻한 음식 영화인 줄 알았는데, 다 보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조용히 던져주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쿠에 할머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저도 모르게 '저분은 좀 이상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손가락이 심하게 뒤틀린 채 일흔여섯의 나이로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거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판단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영화는 도쿠에의 과거를 통해 한센병(Hansen's disease) ..
솔직히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같은 서늘하고 치밀한 미스터리만 쓰는 작가라고 단정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같은 작가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정말 미스터리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구성이 정교했고, 다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못했습니다. 시간여행, 인연의 방정식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시간 구조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도둑 세 명이 숨어든 폐가에서 32년 전 편지가 날아온다는 설정이 처음엔 그냥 판타지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쌓이면서 이게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촘촘하게 짜..
쉬러 갔다가 오히려 더 피곤해진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여러 번. 일본에서 일하던 시절, 번아웃이 왔을 때 우연히 틀어놓은 영화 한 편이 그 질문에 조용히 답을 줬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작 이었습니다. 쉬러 간 섬에서 주인공 타에코는 딱 제가 좋아하는 휴가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곳,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곳, 그냥 혼자 조용히 책이나 읽다가 오는 것. 그 계획을 들고 남쪽 바닷가 섬의 작은 펜션을 예약합니다.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일이 틀어집니다. 여관 주인 유지는 엉성한 손그림 지도를 공항에 남겨두고, 타에코는 그 지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 펜션을 찾아옵니다. 유지는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은 이 마을에서 살 자격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의미심장..
빚쟁이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빚쟁이한테 돈을 받으며 같이 산책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 영화는 특유의 엉뚱한 유머와 잔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 지는 영화. 일본 영화 '텐텐(轉轉)'은 정처없이 이리저리 걷는 그런 영화입니다. 빚쟁이와 산책, 이상한 설정 빚쟁이가 채무자한테 100만 엔을 주면서 같이 걷자고 하는 설정이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니 그 설정이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대학교 8학년 후미야(오다기리 죠)는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학자금을 마련하려다 사채에 손을 댔고, 결국 84만 엔이라는 빚더미에 앉아 몸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까지 몰립니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