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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측의 죄인 (공소시효, 기소권, 검찰개혁)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 정의는 여전히 정의일까요. 영화 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무라 타쿠야와 니노미야 카즈나리, 두 배우의 이름만 보고 가볍게 봤는데, 이건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공소시효, 기소권, 검찰개혁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이 영화 한 편 안에 촘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죄인법정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인데, 공소시효라는 개념이 나올 때마다 묘하게 찝찝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공소시효(公訴時效)란, 범죄가 발생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가 더 이상 그 범죄를 기소할 수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지나버리면 설령 범인을 알고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영화..

카테고리 없음 2026. 9. 12. 10:34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무죄추정, 사법현실, 치한누명)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일본 형사재판의 유죄율이 99.9%에 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2007년작 는 만원 전철 안에서 치한 누명을 쓴 26세 청년 카네코 텟페이가 "하지 않았다"는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사법 시스템과 맞서는 법정 드라마입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여운이 아니라, 뭔가 불편한 것이 위장 근처에 걸린 느낌이랄까요. 무죄추정 원칙, 사법 현실영화의 핵심을 한 줄로 짚자면, 무죄추정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이 현실에서 얼마나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무죄추정 원칙이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를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근대 형사사법의 대원칙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텟페이는 경찰서에..

카테고리 없음 2026. 9. 11. 18:45
메종 드 히미코 (감정변화, 연대, 피키피키)

혐오가 연대로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2005년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그 질문에 꽤 정직하게 답합니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게이 양로원에 발을 들인 사오리가, 끝에는 자기 발로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줄거리가 아니라, 빛바랜 여름 색 같은 화면 분위기였습니다. 사오리의 감정변화 어릴 적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도장 회사에서 일하며 빚을 갚고 있는 딸 사오리 앞에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옵니다. 아버지 히미코의 연인 하루히코(오다기리 조)였습니다. 그가 꺼낸 제안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히미코가 설립한 게이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서 일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사오리가 일을 수락한 건 높은 일당과 유산에 대한 기대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0. 17:15
유레카 (식구, 침묵, 트라우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3시간 37분짜리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범인을 추리하고 있었거든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그 시간 내내 제가 해온 탐정 놀이가 얼마나 쓸모없는 짓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오야마 신지의 는 그런 영화입니다. 범죄 미스터리인 척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밥 한 끼와 침묵 하나로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식구가 되는 방식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가 '식구(食口)'였습니다. 한국어에서 식구란 한 솥에서 밥을 나눠 먹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혈연이 아니어도, 같은 공간에서 밥을 함께 먹는 관계라면 식구가 됩니다. 는 일본 영화인데도 이 개념을 이보다 더 잘 구현하기 어렵겠다 싶을 만큼, 공동식사(共同食事)를 통한 유..

카테고리 없음 2026. 9. 9. 22:06
묻지마 사랑 (켄타로, 초식남, 규동집)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초식남(草食男子)이라는 캐릭터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초식남이란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조용히 머무르는 남성을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입니다. 그런데 2013년작 (원제: 箱入り息子の恋)을 보고 나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켄타로라는 인물이 제 슬픔 포인트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거든요. 켄타로라는 인물, 초식남 영화 정보란에는 켄타로를 '반히키코모리(半引きこもり)'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히키코모리란 완전한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지만 사회적 관계를 극도로 회피하며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청 공무원으로 13년째 말단을 지키며 승진 의욕도 없고, 퇴근 후에는 밥 먹고 게임만 하는 3..

카테고리 없음 2026. 9. 8. 23:30
일본영화 폭탄 (사토 지로, 심리전, 반전)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첫 장면에서 초라한 중년 아저씨 하나가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게 스릴러 맞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5분도 채 안 돼서 사토 지로의 연기에 완전히 끌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일본영화 〈폭탄〉은 재일 한국인 3세 작가 오승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취조실 한 칸에서 도쿄 전체를 흔드는 심리전을 그려낸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사토 지로가 만들어낸 취조실의 심리전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작품이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즈키 타고사쿠는 술에 취해 자판기를 부수고 점원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온 인물인데, 처음에는 그냥 어눌하고 모자라 보이는 잡범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시간 뒤 도쿄에서 폭발이 일어난다"고 ..

카테고리 없음 2026. 9. 7. 21:29
클로즈드 노트 (두 여자, 노트의 비밀, 다케우치 유코)

만난 적 없는 두 여자가 하나의 노트로 연결된다. 2007년 일본 영화 '클로즈드 노트'가 제게 던진 첫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잔잔한 멜로인 줄 알고 봤다가, 후반부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주하고 한동안 멍하게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만난 적 없는 두 여자가 하나의 노트로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대학생 호리이 카에(사와지리 에리카 분)가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거울 뒤에서 우연히 노트 한 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노트가 단순한 메모장이 아니었습니다. 전 주인이 남기고 간 일기장이었고, 쓴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 마노 이부키(다케우치 유코 분)였습니다.이 영화의 핵심 장치는 '평행 서사(parallel narrative)'입니다. 평행 서사란 두 개 이상의 시간선이나 인물의 이야기가 동..

카테고리 없음 2026. 9. 6. 23:38
나만이 없는 거리 (타임리프, 범인추리, 카요구출)

타임리프 영화라고 하면 으레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에 집중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살인범 추적이 아니라 외톨이 여자아이 히나즈키 카요와 함께했던 평범한 하루들이었습니다. 2016년 개봉한 《나만이 없는 거리》, 기대와 실제 사이에서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타임리프(time leap)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단순히 시간을 되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가진 채 과거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능력을 '리바이벌'이라고 부릅니다.리바이벌이란 주변에 사고나 위험이 임박했을 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이 되돌아가는 현상입니다. 주인..

카테고리 없음 2026. 9. 5. 12:55
히로인 실격 (서브남병, 캐릭터 분석, 순정만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기 전에 리뷰들을 훑었더니 서브남인 코스케를 앓는다는 한줄평이 유독 눈에 띄었거든요. 배우 얼굴을 미리 찾아봤을 땐 '잘생기긴 했지만 그렇게 내 취향은 아닌데' 하고 넘겼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 30분도 안 돼 코스케밖에 안 보이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2015년작 일본 순정만화 원작 영화 《히로인 실격》, 저처럼 서브남에게 자꾸 꽂히는 분들이라면 각오하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브남병 — 코스케가 남주보다 더 남주 같은 이유제게는 소위 '서브남병'이 있습니다. 여기서 서브남병이란, 로맨스물을 볼 때 최종 커플로 낙점된 남주인공보다 조력자 포지션의 서브 남성 캐릭터에게 더 강하게 감정이 이입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곁을..

카테고리 없음 2026. 9. 4. 21:52
근거리 연애 (쿠루루기 유니, 야마삐, 순정만화)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고마츠 나나의 조합. 성인이 되서 보는 순정만화 감성. 뻔한 듯, 유치한 듯 하면서도 재밌게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원작 만화의 팬이라면 분명 다른 감상이겠지만, 저로서는 교탁 밑 키스 장면 하나가 이 영화의 전부를 설명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쿠루루기 유니, 표정 없는 천재 소녀 학창 시절에 일본 순정만화를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말수 적고 무표정한 여주인공이 알고 보면 감정이 넘치는 캐릭터라는 공식이었는데, 쿠루루기 유니는 그 공식의 정석 같은 인물입니다.유니는 전교 1등이지만 감정 표현이 극도로 서툽니다. 기분이 좋아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신 머리에 꽂은 고양이 핀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부끄러우면 귀에 손이 가고, 긴장하거나 속..

카테고리 없음 2026. 9. 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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