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프 영화라고 하면 으레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에 집중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살인범 추적이 아니라 외톨이 여자아이 히나즈키 카요와 함께했던 평범한 하루들이었습니다. 2016년 개봉한 《나만이 없는 거리》, 기대와 실제 사이에서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타임리프(time leap)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단순히 시간을 되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가진 채 과거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능력을 '리바이벌'이라고 부릅니다.리바이벌이란 주변에 사고나 위험이 임박했을 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이 되돌아가는 현상입니다. 주인..
범죄자를 죽이는 사람이 과연 살인자일까요, 아니면 영웅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 채 영화를 끝까지 봤습니다. 2006년 개봉한 일본 실사화 영화 데스노트는 가네코 슈스케 감독, 후지와라 타츠야와 마츠야마 켄이치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만화 원작이 워낙 레전드급인 덕분에 제목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원작 만화는 12권 완결임에도 3천만 부 이상을 판매한 작품인 만큼,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봤던 영화였습니다. 원작 비교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개봉 시점이 아닌 한참 뒤에야 봤습니다. 데스노트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일상 언어처럼 쓰이고 있으니 굳이 영화까지 찾아볼 이유를 못 느꼈던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원작의 팬으로서 영화 버전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
과거로 돌아가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굳이 돌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이 설정을 알았을 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오히려 그 규칙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본영화 〈커피가 식기 전에〉, 조용한 주말 오후에 혼자 봤는데 결말 즈음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굴곡 없는 영화를 좋아하는 저한테는 꽤 오랜만에 제대로 마음에 박힌 작품이었습니다. 타임슬립 설정 이 영화는 타임슬립(time slip), 즉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합니다. 여기서 타임슬립이란 특정 인물이 현재 시점을 벗어나 과거 혹은 미래의 시간대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판타지 장치를 의미합니다. 수많은 타임슬립 영화가 있지만 〈커피가 식기 전에〉가 독특한 이유는 그 조건이 유독 까다롭다는 점입니다.이 카페..
사랑이 끝났을 때,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2004년 일본 영화 는 첫사랑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오래된 감정이 건드려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줄거리 영화는 결혼을 앞둔 사쿠타로(오오사와 타카오 분)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약혼녀 리츠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그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향한 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알아챕니다. 여기서 이미 영화는 심상치 않은 예고를 던집니다. 왜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났을까요?시간은 1980년대 중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 사쿠타로(모리야마 미라이 분)는 같은 반 아키(나가사와 마사미 ..
낯선 사람과 하루를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는 게 낭만일까요, 아니면 그냥 시간 낭비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꽤 오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영화 "흐르는대로"는 어떤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그냥 두 사람이 걷고 말하고 또 걷는 하루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이상하게 뭔가 남더라고요. 끌림 영화는 버스 안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사토미(카라타 에리카)가 옆자리 낯선 남자 토모노리(엔도 유야)의 책을 슬쩍 훔쳐보는 장면인데요. 제가 본 첫인상은 "아 맞아, 저 상황 나도 해봤다"였습니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종이책 읽는 사람 보면 괜히 눈이 가잖아요. 딱 그 감각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토모노리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책갈피를 떨어뜨리고, 사토미는 그걸 줍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
타임리프 설정의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 화려한 액션이나 복잡한 퍼즐 같은 구조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만이 없는 거리》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혼자였던 아이 곁에 누군가가 있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리바이벌이라는 능력 타임리프(time leap)라는 개념, 즉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동하는 능력을 다루는 작품은 이미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설정에서 주인공은 능력을 자유롭게 제어하고, 원하는 시점으로 돌아가 상황을 유리하게 바꿉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후지누마 사토루가 가진 리바이벌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서 리바이벌이란 사토루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실종 가족이 언론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안타깝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2024년 일본 영화 미싱(Missing)은 그 안일한 시선을 완전히 부숴버린 작품이었습니다. 범인을 잡는 스릴러가 아니라, 아이를 잃은 가족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현실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담아낸 영화입니다. 실종가족이 겪는 진짜 고통 영화는 딸 미우가 실종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엄마 사오리(이시하라 사토미)와 아빠 유타카(아오키 무네타카)는 매일 전단지를 들고 거리를 헤맵니다. 조그마한 단서라도 있으면 몸을 먼저 움직이고, 경찰서를 수시로 들러 확인하고, 방송국 문을 두드립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처..
솔직히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불치병, 이별, 죽음. 예상 가능한 공식에 이미 면역이 생겨버린 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벚꽃 같은 나의 연인》을 보고 나서 화면 앞에서 코를 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의 라이징 스타 나카지마 켄토와 마츠모토 호노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뻔한 걸 알면서도 결국 보고야 마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마법사"라고 부르는 직업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 우야마 게이스케의 동명 소설인데, 소설을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제가 끝까지 읽어봤을 만큼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원작과 어떤 부분이 살아남고 어떤 부분이 사라졌는지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에서 느꼈던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직 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잔잔한 일본 영화'라는 소개만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힐링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첫 장면에서 치히로가 혼자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달랐습니다. 2023년 개봉작 《치히로 상》은 2시간 11분짜리 영화인데,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줄거리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는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합니다. 과거에 성 노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금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영화는 치히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스쳐가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
유난히 끈적한 여름 저녁,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마음이 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를 떠올립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화려한 반전도, 눈물 쏟게 하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위로였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그게 반성이었습니다. 코모리로 도망친 이치코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영화는 그 이유를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이 "자연이 곧 주연 배우"라고 했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이치코의 과거는 그냥 화면 밖에 놓여 있습니다. 직접 보니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