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가 원작 소설을 얼마나 충실히 옮기는지 반신반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을 보고 나서 그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4건의 살인 중 단 1건만 부정하는 연쇄살인범, 그리고 그 살인범의 의뢰를 받아 진범을 추적하는 대학생. 이 황당하면서도 소름 돋는 설정이 실제로 스크린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질서형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 일반적으로 연쇄살인범 영화라고 하면 잔혹한 장면을 전면에 내세운 공포물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맥락으로 접근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이었습니다.이 영화의 핵심은 '질서형 연쇄살인범(Organized Serial Killer)'이라는 범죄심리학 개념에 있습니다. 여기서 질서형 연쇄살인범이란, 높은 지능과 철저한 사전 계획을..
시골로 이주하면 삶이 단순해지고 행복해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영화 는 낚시를 위해 도쿄를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저는 보는 내내 "이게 로맨스 영화인지, 일본 사회 다큐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키야(空き家), 즉 '빈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고 나면 한국 얘기이기도 하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아키야(빈집문제): 영화가 건드린 진짜 사회 문제아키야(空き家)란 말 그대로 일본어로 '빈 집'을 뜻합니다. 여기서 아키야 문제란 단순히 집이 비어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령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결합하면서 지방과 교외의 주택이 대규모로 방치되는 구조적 사회 현상을 가리킵니다.일본 전체 주택 중 아키야 비율은 현재 13%에 달합니다...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오이 유우 사진을 검색하다가 보게된 영화인데,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동안 20대 시절 느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왔습니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는 순정만화 원작의 미대생 청춘 이야기인데, 제가 이 영화를 본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결국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짝사랑의 구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짝사랑을 이렇게 많이?"였습니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구조인데, 보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연스럽습니다.건축과 학생 타케모토는 회화과 신입생 하구미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하구미가 헤드폰을 끼고 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듯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타케모토가 캔버스 속 벚..
개봉 당시 관객 수 약 7천 명. 숫자만 보면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영화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인생 영화'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흘려 봤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이상하게 눈가가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2006년 작 일본 영화 ,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단연 yes입니다. 핀란드 헬싱키 카모메(かもめ)는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합니다. 핀란드 헬싱키 해안가에 갈매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서 이미 감독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영화의 배경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골목 어딘가에 자리 잡은 작은 일식당입니다. 주인은 일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직 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잔잔한 일본 영화'라는 소개만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힐링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첫 장면에서 치히로가 혼자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달랐습니다. 2023년 개봉작 《치히로 상》은 2시간 11분짜리 영화인데,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줄거리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는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합니다. 과거에 성 노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금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영화는 치히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스쳐가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
20년 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 끝에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보였다. 2018년 개봉한 일본 영화 이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줄거리만 보고 '이게 영화가 되나?' 싶었는데, 엔딩을 맞이하고 나서 제 최애 힐링 영화 목록이 조용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도 영화 이 영화는 모리시타 노리코의 에세이 《다도가 준 스무 번의 행복》을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에세이 자체가 다도(茶道)를 통해 삶의 감각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실화 기반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다른 영화들과 결이 달랐습니다.스무 살의 주인공 노리코(쿠로키 하루 분)는 엄마의 권유로 얼떨결에 사촌 미치코와 함께 동네 다도 선생님 타케다(키린 키키 분)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취업도 안 되고,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고, ..
유난히 끈적한 여름 저녁,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마음이 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를 떠올립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화려한 반전도, 눈물 쏟게 하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위로였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그게 반성이었습니다. 코모리로 도망친 이치코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영화는 그 이유를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이 "자연이 곧 주연 배우"라고 했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이치코의 과거는 그냥 화면 밖에 놓여 있습니다. 직접 보니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봤는데, 정작 제가 울컥했던 건 연애 장면이 아니었거든요.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그 꿈을 찾는 순간, 그게 어찌나 낯설고 또 익숙하던지. 이 영화는 로맨스 포장지 안에 담긴 청춘 드라마였습니다. 줄거리와 주제 처음 이 영화를 고른 건 솔직히 고마츠 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시선을 붙잡은 건 오오이즈미 요가 연기한 콘도 마사미였습니다. 서툴고 소심한데 어딘가 단단한 인물. 그 조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육상부의 에이스였던 고등학생 타치바나 아키라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달리기를 관두고, 그 공백을 채우듯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만난 점장 콘도 마..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시한부를 다룬 작품은 대부분 비슷한 공식을 따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시간을 절박하게 버티다가 끝내 무너지는 이야기. 그런데 는 달랐습니다. 두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서로에게 빛이 되는 이야기였고,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 일반적으로 시한부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한쪽만 병을 앓는 구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키토와 하루나, 둘 다 시한부라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작위적이지 않을까?" 하고 살짝 회의적이었는데, 막상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아키토는 심장 종양(cardiac tumor)으로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여기서 심..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첫사랑의 환상"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카라타 에리카의 눈빛만 보고 보기시작했다가, 중반부터 뒷목을 잡았습니다. 얼굴만 똑같이 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여자의 이야기, 일본 영화 입니다. 첫사랑의 환상, 도플갱어 로맨스영화는 오사카의 한 사진전에서 시작됩니다. 대학생 아사코는 그곳에서 바쿠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이 남자가 접근하는 방식이 심상치 않습니다. 처음 본 사람한테 이름을 물어보고, 거의 바로 키스를 시도합니다. 제가 봤을 때 이건 현실이었다면 경찰서행이 맞습니다. 그런데 잘생기면 다 됩니다. 영화의 법칙이죠.바쿠는 전형적인 충동적 직진형 인물입니다. 흔히 영화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free 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