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목만 봤을 땐 클릭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말이 기괴하게 느껴져서 한동안 목록에만 넣어두고 미뤘거든요. 막상 보고 나서는 그 망설임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제목이 품고 있는 의미가 이렇게 조심스럽고 따뜻한 고백일 줄은, 다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제목의 의미 영화를 보기 전, 제가 가장 먼저 찾아본 건 제목의 뜻이었습니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표현은 고대 민간 신앙에서 비롯된 말로, 아픈 부위와 같은 동물의 장기를 섭취하면 그 병이 낫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췌장을 먹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신체 일부를 탐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싶다, 혹은 너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상징적 고백입..
솔직히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불치병, 이별, 죽음. 예상 가능한 공식에 이미 면역이 생겨버린 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벚꽃 같은 나의 연인》을 보고 나서 화면 앞에서 코를 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의 라이징 스타 나카지마 켄토와 마츠모토 호노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뻔한 걸 알면서도 결국 보고야 마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마법사"라고 부르는 직업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 우야마 게이스케의 동명 소설인데, 소설을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제가 끝까지 읽어봤을 만큼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원작과 어떤 부분이 살아남고 어떤 부분이 사라졌는지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에서 느꼈던 ..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오이 유우 사진을 검색하다가 보게된 영화인데,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동안 20대 시절 느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왔습니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는 순정만화 원작의 미대생 청춘 이야기인데, 제가 이 영화를 본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결국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짝사랑의 구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짝사랑을 이렇게 많이?"였습니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구조인데, 보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연스럽습니다.건축과 학생 타케모토는 회화과 신입생 하구미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하구미가 헤드폰을 끼고 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듯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타케모토가 캔버스 속 벚..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스토리보다 화면에 가득 찬 음식에만 눈이 갔습니다. 영하 54도 남극 기지에서 튀김이라니, 라멘이라니.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음식 너머로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극한의 고립감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는지, 그리고 한 그릇의 밥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2009년작 를 보고 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립감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영화의 배경은 1997년 일본 남극 돔 후지 기지입니다. 해발 3,810m, 평균 기온 영하 54도. 연안의 쇼와 기지에서 약 1,000km 떨어진 내륙 오지입니다. 펭귄도, 바다표범도, 심지어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이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제가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개봉 당시 관객 수 약 7천 명. 숫자만 보면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영화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인생 영화'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흘려 봤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이상하게 눈가가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2006년 작 일본 영화 ,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단연 yes입니다. 핀란드 헬싱키 카모메(かもめ)는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합니다. 핀란드 헬싱키 해안가에 갈매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서 이미 감독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영화의 배경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골목 어딘가에 자리 잡은 작은 일식당입니다. 주인은 일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직 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잔잔한 일본 영화'라는 소개만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힐링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첫 장면에서 치히로가 혼자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달랐습니다. 2023년 개봉작 《치히로 상》은 2시간 11분짜리 영화인데,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줄거리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는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합니다. 과거에 성 노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금은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영화는 치히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스쳐가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
20년 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 끝에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보였다. 2018년 개봉한 일본 영화 이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줄거리만 보고 '이게 영화가 되나?' 싶었는데, 엔딩을 맞이하고 나서 제 최애 힐링 영화 목록이 조용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도 영화 이 영화는 모리시타 노리코의 에세이 《다도가 준 스무 번의 행복》을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에세이 자체가 다도(茶道)를 통해 삶의 감각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실화 기반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다른 영화들과 결이 달랐습니다.스무 살의 주인공 노리코(쿠로키 하루 분)는 엄마의 권유로 얼떨결에 사촌 미치코와 함께 동네 다도 선생님 타케다(키린 키키 분)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취업도 안 되고,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고, ..
유난히 끈적한 여름 저녁,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마음이 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를 떠올립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화려한 반전도, 눈물 쏟게 하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위로였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그게 반성이었습니다. 코모리로 도망친 이치코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영화는 그 이유를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이 "자연이 곧 주연 배우"라고 했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이치코의 과거는 그냥 화면 밖에 놓여 있습니다. 직접 보니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가노 메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고생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몰입감 있게 다가올 줄은 몰랐거든요. 동명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은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한 소녀 스즈메의 첫사랑을 중심으로, 선생님과 동급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삼각 로맨스를 담아낸 청춘 영화입니다.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소재인데, 제가 봤을 때 오히려 그 유치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나가노 메이 제가 나가노 메이를 처음 인식한 건 3A에서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학생 역이 잘 어울리는 배우 정도로만 봤어요. 그러다 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단순히 연기를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이 배우만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뭐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봤는데, 정작 제가 울컥했던 건 연애 장면이 아니었거든요.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그 꿈을 찾는 순간, 그게 어찌나 낯설고 또 익숙하던지. 이 영화는 로맨스 포장지 안에 담긴 청춘 드라마였습니다. 줄거리와 주제 처음 이 영화를 고른 건 솔직히 고마츠 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시선을 붙잡은 건 오오이즈미 요가 연기한 콘도 마사미였습니다. 서툴고 소심한데 어딘가 단단한 인물. 그 조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고요.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육상부의 에이스였던 고등학생 타치바나 아키라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달리기를 관두고, 그 공백을 채우듯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만난 점장 콘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