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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코모레비, 반복과 균열, 흔들림)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보기시작했습니다.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자가 소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히라야마의 마지막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 오늘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라는 것을. 코모레비 코모레비(木漏れ日)란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찰나를 포착하는 단어인데, 히라야마가 점심마다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게 오래 남은 것도 이 코모레비였습니다. 그가 찍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흔들리는 순간이니까요.일반적으로 이..

카테고리 없음 2026. 7. 25. 10:06
아무도 모른다 (방치, 고레에다, 생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실제로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네 남매가 엄마 없이 버텨낸 사계절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비명도, 과장된 슬픔도 없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방치가 시작되는 방식 영화를 볼 때 제가 가장 당황했던 건 도입부의 분위기였습니다. 이사 온 첫날, 엄마 케이코는 밝고 젊어 보이고, 아이들은 캐리어 속에서 낄낄거리며 나옵니다. 무거운 음악도, 불길한 조짐도 없습니다. 그냥 좀 특이한 가족처럼 보일 뿐이죠.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습니다.집주인에게는 장남 아키라만 알린 채 나머지 세 남매는 숨겨 들어온 이 가족에게는 규칙이 ..

카테고리 없음 2026. 7. 24. 13:19
지금 만나러 갑니다 (줄거리, 결말, 다케우치 유코)

2004년 일본 극장에서 46,616,207달러를 벌어들인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영화 제목이 검색창을 오르내린다는 것입니다. 그 영화가 바로 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예쁜 러브스토리인줄 알았는데, 두 번째 볼 때 미오가 내린 선택의 무게를 비로소 제대로 느꼈습니다. 줄거리와 결말 영화는 사실 결말부터 보여줍니다. 곧 18살이 될 유지가 케이크 가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단순한 프롤로그가 아닙니다. 이 첫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핵심을 조용히 품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엄마 미오를 잃은 타쿠미는 여섯 살 아들 유지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를 앓..

카테고리 없음 2026. 7. 24. 10:32
백만엔 걸 스즈코 (전과자, 도망, 성장)

2008년 개봉한 일본 영화, 청춘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 솔직히 처음엔 그냥 맘에 드는 배우, 아오이 유우가 나와서 보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낭만적인 자아 찾기 여행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상처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게 강함인지, 아니면 그냥 도망인지. 이 영화는 그 경계를 조용히 알려줍니다. 전과자가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이 전과자가 되는 장면은 극적인 선택이나 큰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예상 밖이었던 건, 스즈코의 전과가 사실상 그녀 다운 선택에서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전문대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버티..

카테고리 없음 2026. 7. 23. 22:45
태풍이 지나가고 (료타, 고레에다, 가족드라마)

문학상을 받은 지 15년이 지나도록 두 번째 소설을 쓰지 못한 남자.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발이 묶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료타. 가족의 회복을 원하지만 맘대로 되지않습니다. 이 영화는 삶이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알려줍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요. 료타라는 인물이 불편한 이유영화 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흔히 말하는 '공감형 주인공'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때 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사설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소설 취재를 위한 것"이라는 핑계를 스스로 하면서요. 저도 비슷한 자기 합리화를 많이 해왔던지라 보면서 웃음이 났습니다.더 문제는 흥신소에서 번 돈을 경마로 탕진하고, 전처 쿄코(마키 요코)에게..

카테고리 없음 2026. 7. 22. 11:20
세 번째 살인 (법정 드라마, 사법 시스템, 진실의 왜곡)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미 답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길이 치솟는 하천부지, 무표정하게 자리를 뜨는 남자. 누가 봐도 명백한 장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난 뒤, 나의 생각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였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은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판단은 관객의 몫입니다. 법정 드라마 이 영화가 단순한 법정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엘리트 변호사가 전과자를 변호하고, 우여곡절 끝에 극적인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그런 류의 이야기라고 짐작했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미스미(야큐쇼 코지)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통제권을 잃기 시작합니다. 미스미는 첫 접견에서 도박 빚을 갚으려 사장을 죽였다고 실토하지만, 시게모리는 이를 해..

카테고리 없음 2026. 7. 22. 07:10
괴물 (다시점 구조, 확증 편향,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에서 진짜 괴물이 나올까요?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 불편한 진실이 오래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다시점 구조, 확증 편향 영화는 세 개의 파트로 나뉩니다. 엄마 사오리의 시점, 담임교사 호리의 시점, 그리고 아이들인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 같은 사건이 세 번 반복되지만, 볼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 구조를 흔히 다시점 서사(多視點 敍事)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다시점 서사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반복 서술함으로써, 고정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카테고리 없음 2026. 7. 21. 23:42
어느 가족 리뷰 (서스펜스, 하이퍼리얼리즘, 고레에다)

핏줄이 아니면 가족이 아닐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의문이 남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도둑질로 하루를 버티는 가짜 가족의 해체 과정을 통해 진짜 관계란 무엇인지 묵직하게 던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서스펜스의 정체영화는 두 남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범죄 스릴러처럼 출발하지만, 이내 분위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오사무와 소년 쇼타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혼자 추위에 떨고 있는 네 살배기 유리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진짜 긴장감이 시작됩니다.여기서 작동하는 감정이 바로 내러티브 서스펜스(Narrative Suspense..

카테고리 없음 2026. 7. 21. 20:25
플랜 75 (안락사, 디스토피아, 고령화사회)

국가가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유하는 제도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시간 내내 숨죽이며 따라가게 만드는 영화. 일본 개봉 후 한국에도 소개된 이 작품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카메라 도르 특별 표창, 제95회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를 만큼 묵직한 울림을 국제 사회에 남겼습니다. '친절한 죽음' — 플랜 75 일반적으로 안락사(euthanasia)라고 하면 말기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안락사란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생을 마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속 제도는 이와 결이 다릅니다. 건강 진단도, 의사 소견도, 가족 동의도 필요 없습니다. 75..

카테고리 없음 2026. 7. 20. 21:43
영화 텐텐 (오다기리죠, 도쿄산책, 힐링영화)

빚쟁이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빚쟁이한테 돈을 받으며 같이 산책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 영화는 특유의 엉뚱한 유머와 잔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 지는 영화. 일본 영화 '텐텐(轉轉)'은 정처없이 이리저리 걷는 그런 영화입니다. 빚쟁이와 산책, 이상한 설정 빚쟁이가 채무자한테 100만 엔을 주면서 같이 걷자고 하는 설정이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니 그 설정이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대학교 8학년 후미야(오다기리 죠)는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학자금을 마련하려다 사채에 손을 댔고, 결국 84만 엔이라는 빚더미에 앉아 몸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까지 몰립니다. 그 ..

카테고리 없음 2026. 7. 2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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